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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접고 버려진 동물 보호·공존 연구…동물 소재 전혀 안 쓰는 ‘착한패션’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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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동물보호단체 ‘카라’ 전진경 이사
국내 최초 길냥이 주제 석사논문 써
급식소 등 유기동물 보호활동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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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경 이사는 “동물과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캣 맘(cat mom)’이란 표현은 쓰면 안 됩니다. 고양이에게 필요한 건 보호자가 아니라 친구거든요.”

길에 사는 야생 고양이, 이른바 ‘길냥이’의 전문가인 전진경(52)씨의 말이다. 전씨는 “고양이는 독립성이 강한 동물이기 때문에 주인이 아닌 파트너가 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상임이사인 그는 2012년 국내 최초로 ‘길냥이’를 주제로 한 논문(석사학위)을 썼다. 이후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그는 유기동물 보호 활동을 하며 ‘길냥이’의 생태를 연구 중이다. 이 같은 연구를 바탕으로 전씨는 카라에서 유기동물 구호 정책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중성화’ 캠페인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새끼를 낳다 죽는 고양이들이 많습니다. 개체 수를 제한하면 어미 고양이의 삶의 질도 높아지고 인간 입장에서도 불편을 덜 느낄 수 있죠.” 처음 전씨가 고양이 연구를 시작한 건 2010년. 집 주변 ‘길냥이’ 15마리의 생태를 관찰하면서부터다. 6개월간 밥을 챙겨 주며 ‘길냥이’의 친구가 됐다. 이후 사비를 들여 ‘길냥이’를 중성화했고 폐쇄회로TV(CCTV)를 달아 1년간 이들의 실상을 연구했다.

“고양이도 사람과 똑같습니다. 개체마다 개성이 뚜렷하지만 공동체를 이뤄 어울려 살기도 합니다.” 특히 외부에서 다른 ‘길냥이’가 유입되면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힘을 합쳐 대응했다. 그는 “중성화된 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은 수컷들이 침범하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협동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후 카라는 2013년 중성화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현재까지 1500여 마리의 ‘길냥이’를 중성화했다. “‘길냥이’와 인간이 어울려 살기 위한 차선책입니다. 고양이 입장에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선택이지만 중성화 이후 고양이의 삶의 질이 더 높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길냥이’의 생태 연구로 전씨가 발견한 사실은 고양이가 매우 신사적인 동물이라는 점이다. “절대 자신보다 어리거나 병든 개체와는 싸우지 않아요. 모성애도 강하고 임신한 암컷은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연구를 통해 전씨가 밝혀낸 또 다른 중요한 점은 ‘길냥이’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생후 8주 이전에 사람 손을 탄 ‘길냥이’는 ‘입양’을 통해 사람과 함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길냥이’는 야생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카라’는 버려지거나 나이가 어린 ‘길냥이’ 2000여 마리를 입양시켰고 ‘길냥이’를 위해선 전용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전씨가 처음 유기동물 보호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2년. 어릴 적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동물을 좋아하게 됐다. 약사인 그는 약국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봉사활동을 했다.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시작한 건 대학원에서 ‘길냥이’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2014년엔 약국 문을 닫고 ‘카라’에 전업으로 뛰어들었다.

“호기심으로 애완동물 기르다 싫증나면 버리는 사람이 많아요. 동물들도 하나의 생명인데 물건처럼 취급하면 안 됩니다.” 전씨의 꿈은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며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버려진 동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도 공감할 수 있다”며 “서로 배려하고 정이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패션업체 ‘비건타이거’ 양윤아 대표
모피·울·실크 대신 합성섬유로 제품
수익 3~5%는 동물보호단체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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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아 대표는 “인간의 사치로 동물 이 죽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패션업체인 ‘비건타이거(Vegan Tiger)’의 양윤아(34) 대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만드는 옷은 ‘비건 패션(Vegan Fashion)’, 양씨의 표현에 따르면 소위 ‘착한 패션’이다. 비건이란 원래 우유 같은 유제품까지도 먹지 않는 극단적 채식주의자를 일컫는 용어지만 패션업계에선 동물로부터 채취한 어떠한 소재도 쓰지 않고 생산된 옷을 칭한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사설교육기관에서 패션디자인을 배운 양씨는 6년간 패션업계에서 종사한 평범한 디자이너였다. 심지어 육식을 좋아해 주위에서 고기광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그러던 양씨가 동물보호에 관심을 가진 건 2011년 구제역 파동을 겪으면서다. 돼지들이 살처분되는 모습을 보고 양씨는 충격을 받았다. 양씨는 “당시 반려묘를 키우면서 동물도 감정을 공유하는 생명체라는 걸 알게 됐다. 돼지라고 다를 리 없을 텐데 구제역 우려라는 이유만으로 구덩이 속으로 암매장당하듯 밀려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 후 양씨는 ‘케어(Care)’라는 동물보호단체에서 동물학대 제보 담당으로 3년간 일했다. 그러다 문득 특기를 살려 보자 결심했다. 양씨는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겨울이면 정기적으로 모피 반대 운동을 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모피나 동물성 소재를 빼면 정말 입을 게 없더라”며 “착한 소비를 강요하기보다는 경험을 살려 멋지면서도 윤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만들어 주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비건패션을 준비했다. 지난해 말에는 사업자 등록까지 끝마쳤고 SNS를 통해 개별적으로 주문을 받거나 비건 페스티벌을 기획해 현장에서 소량 판매해 오고 있다. 적은 수익이었지만 수익의 3~5% 정도는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기 위해 모아둔다.

준비가 쉽지는 않았다. 모피나 울(wool), 실크 등은 아예 쓰지 않고 면·재생섬유·합성섬유·인조섬유로 대체하면서 품질까지 좋아야 했다. 양씨는 “일부 국내 비건패션 업체에선 양털로 만드는 울이나 누에에서 얻는 실크는 괜찮다며 쓰는 곳이 있다”며 “하지만 양털을 대량 채취하는 과정에서 피부가 뜯겨 방치되다가 죽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실크도 누에가 든 고치를 통째로 삶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추에서부터 부자재 달 때 쓰이는 실까지 성분을 꼼꼼히 따지느라 예상보다 준비 기간이 길었지만 우리만의 길을 고집했다”고 덧붙였다.

비건타이거는 오프라인 매장이 따로 없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작은 패션업체다. 하지만 양씨의 목표는 당차다. “비건타이거의 상표 이미지는 호랑이 가면을 쓴 히어로 모습이에요. 지금은 월급도 없이 제 돈 쓰며 사업하고 있지만 3년 내에 비건패션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 동물들의 수퍼히어로가 될 겁니다. 착하기만 했던 비건패션도 멋질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겠습니다.”

글=윤석만·노진호 기자 sam@joongang.co.kr
사진=최정동·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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