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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시늉만 한 조선 구조조정…1년을 날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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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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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4번 도크가 텅 비어 있다. [중앙포토]

‘빅3 체제(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를 유지한 채 2020년까지 버티도록 지원하겠다. ’

정부, 11조 발주 지원이 골자
대부분 업계 자구안 되풀이
업황 개선 기다려 보자는 뜻
“여론 눈치, 시간만 허비” 비판

정부가 31일 발표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정부는 “점진적으로 2018년부터 업황이 개선된다는 게 (조선·해양 분석업체인)클락슨의 전망”(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라며 낙관론에 기대고 있다.

이날 발표된 방안의 골자는 조선 3사가 설비와 인력을 감축하고 정부가 총 11조2000억원 규모의 선박 발주를 지원하는 것이다.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도크 수를 23%, 직영인력을 32% 줄인다는 계획은 각 사가 6월 내놨던 자구안에도 담겨 있다. 비핵심 사업과 자산을 매각한다는 기존 자구계획도 되풀이했다. 여기에 7조5000억원 규모의 공공선박(군함, 경비정 등 63척)을 2018년까지 조기발주하는 등 2020년까지 총 250척 이상의 선박을 발주한다는 지원 방안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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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맥킨지·클락슨

저가 수주로 조선업 부실을 불러온 해양플랜트 사업은 ‘적자지속 분야’라고 전망하면서도 철수가 아닌 점진적인 축소를 결정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하고 인도하지 않은 해양플랜트 관련 선박이 17척이 되는데 이를 다 건조할 때까진 해양플랜트 설비를 유지해야 한다”(정만기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는 이유에서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민영화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정은보 부위원장은 “기본적으로 (대우조선해양) 주인 찾기는 시장 상황이 받쳐줘야 한다”고만 언급했다.

이번 방안에는 조선 3사를 컨설팅한 맥킨지가 지난 8월 냈던 ‘빅2 체제로 재편’이라는 초안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맥킨지는 독자생존 가능성이 가장 작은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또는 분할안을 제시해 대우조선해양 측의 반발을 샀다. 업계가 10억원을 들여 의뢰한 맥킨지의 보고서 내용은 총 36쪽에 달하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자료 중 겨우 5줄 인용되는데 그쳤다. 2016~2020년 한국 조선사 주력선박의 평균 발주액을 클락슨은 237억 달러, 맥킨지는 163억 달러로 추정해 차이가 컸지만 정부는 클락슨 쪽 전망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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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판단에는 현실적인 여건도 반영됐다. 대우조선을 정리했을 때 고용시장에 주는 충격과 국책은행 부실 같은 파급효과를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지원한 돈은 4조2000억원이 넘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청문회에서“대우조선해양이 부도에 이르렀다면 산은과 수은이 13조원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대우조선 직원만 1만2000명에다 협력업체 직원을 합하면 5만 명이 넘는다.

정만기 차관은 “단 한 번도 대우조선해양을 정리하고‘2강’으로 가자는 (부처간)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며 “대우조선해양이 경쟁력 있는 분야를 확보하고 회생을 빨리 할 수 있는 방법론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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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방안이 대우조선 처리 문제를 차기 정부로 떠넘기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는 1년 전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 투입을 결정했던 서별관회의의 의사결정이 잘못 됐음이 드러나는 것을 미루고 싶은 것”이라며 “내년 선거 이후로 적당히 넘기기 위한 임시방편만 내놨다”고 말했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정부가 자꾸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며 “지금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면 결국 조선산업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데도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 관계자는 “대주주와 정부에 보고했던 자구계획을 반드시 지켜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하남현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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