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매와 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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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교안전 사고 보험법」이라는 생소한 법의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대한교련이 이 입법에 앞장서게 된 것은 작년 5월4일 서울의 어느 변두리 중학교에서 있었던 교사 체벌사건이 발단이라고 한다. 이른바 문제학생 지도를 의해 매를 들었다가 학생이 매를 피하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식물 인간」이 됐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피해 학생의 부모가 서울시 교위에 2억4천4백여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 서울형사지법이 지난 11월 18일 교위가 1억8천8백여만원을 지불하라는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에 당황한 교위는 『담임 교사의 체벌동기가 순수한 교육목적이었고 사고발생 원인의 상당부분이 학생의 잘못에도 있었다』며 원고판결에 불복, 서울고법에 항소중이다.
사고를 낸 교사는 피해 학생이 당초에 자기 반 학생이 아니었으나 학생선도를 자청하고 나서 자기 반으로 끌어들여 지도를 하다 사고를 냈다.
사고발생 후 교사는 교직이 달아났고 형사소추 중에 있어 불운이라고 할까, 딱하기 그지없다.
그런 사정이라면 학생의 부모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멀쩡하던 아들을 학교엘 보냈다가 그 지경이 됐으니 그 쓰라림과 고통은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서울지법의 원고 승소판결이 나오자 일선교사 등 교육계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우리나라 교육여건이나 현실로 보아 체벌은 불가피한데 앞으로 이런 유의 사고가 아니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는 실정에서 교사들의 사기 저하는 물론 교육활동에 적지 않은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다.
국·공립학교는 교육위원회 등 정부기관이 대신해서 배상책임을 진다고 치더라도 가뜩이나 학교재정이 빈약한 사학의 경우 이런 사고가 한번만 발생해도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를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체벌을 않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몇년전 민정당이 훈육적 징벌을 인정하는 내용의 교권보호법의 입법을 추진했을 때 체벌의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었지만 우리 현실로 보아 아직까지 「사랑의 매」는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예컨대 과밀학급에 수업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매를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밀집된 교실공간은 그렇다 하더라도 교사의 학생 1인당 개별 접촉시간이 3분에 불과한 여건에서 수업과정의 위압적 통제방식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교사의 84%가 체벌 경험이 있고 상당수의 학부모조차 폭력이 아닌 사랑의 매는 약이라며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교육은 어디까지나 교사의 사랑과 애정·믿음이 전제되어야 하고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현장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그 매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교내 교육활동중의 사소한 사고나 학부모간에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학생간의 사고까지도 학부모들이 학교에 항의하고 책임추궁을 하는 사례가 몇년전부터 눈에 띄게 잦아지고 있는 현상을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극성 부모라고 무조건 비난만 할게 아니라 학교와 교사들도 자신의 그림자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대한교련의 학교안전 사고보험법안에는 보험계약자가 학교와 교원·학생으로 되어있다.
체벌로 인해 장차 피해를 당할지도 모를 학생까지도 보험에 가입케 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이럴 경우 체벌을 결과적으로 법이 인정하는 셈이고 필요이상의 체벌이 발생할 우려 등 제반 문제점이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일본에서도 시행중이라는 이 제도의 필요성은 그런대로 인정은 되지만 법의 내용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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