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나, LPGA 12년 생활 접고 은퇴 제2의 인생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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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LPGA 투어 생활을 접고 은퇴를 선언한 이미나

미국 무대를 호령했던 한국자매의 1세대 그리고 1.5세대들이 모두 은퇴를 선언했다. 선구자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은 척박한 땅에 씨앗을 심고 물을 뿌리는 등 한국여자골프의 튼튼한 뿌리가 됐다. 이들의 도전과 노력이 오늘날 ‘세리 키즈’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를 호령하게 된 원동력이다.

1.5세대의 마지막 주자였던 이미나(35·볼빅)도 올해를 끝으로 필드와 이별을 고했다. 2005년부터 LPGA 투어에서 활약한 이미나는 12년 미국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나는 2005년부터 올해까지 294경기에 출전해 통산 2승을 거뒀다. 12년 간 490만4425달러(약 55억원)를 벌어 들였고, 톱10 33회를 기록했다.

한 달 전 은퇴 결심을 했다는 이미나는 “모두가 그렇듯 시원섭섭하다. 골프 열정이 많이 식었고, 기량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더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한국에 들어온 지 2주 정도 됐다. 마치 다음 경기를 위한 휴식 시간 같다. 아직 ‘은퇴’는 어려운 단어”라고 털어놓았다. 조건부 시드를 가졌던 이미나는 올 시즌 10경기만 소화했다.

지난 13일 공식 은퇴식을 가졌던 박세리에 이어 이미나의 작별 인사는 팬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고 있다. 이미나는 “세리 언니와 은퇴식 당일에 전화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 동안 고생했고, 하고 싶은 일을 못했으니 이제 같이 여행도 다니자’고 말했다”며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 6월 말 아칸소 챔피언십이 이미나의 마지막 경기였다. 올해 성적이 좋지 않아 하반기에는 나갈 수 있는 대회가 없었다. 대회를 뛰지 않아서인지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됐다. 이미나는 “일반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대회 때보다 적게 먹게 됐고, 살도 빠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시기에 한국에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았던 만큼 부모님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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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나 선수

이미나는 박세리에 이어 6년 만에 한국여자프골프 무대에서 신인왕과 상금왕을 동시 석권하는 등 ‘슈퍼루키’로 명성을 날렸다. 아마추어였던 2001년 프로 첫 승을 신고했던 이미나는 2002년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이미나는 “당시엔 아마추어였고 언니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승에도 크게 기뻐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미나는 정확한 드라이브 샷과 정교한 쇼트게임을 무기로 이듬해 3승을 거두며 신인왕과 상금왕 2관왕을 차지했다. 그래서 '제2의 박세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는 “아무 것도 몰랐던 시기였는데 우승을 한 번 하니 또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골프 인생 최대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회상했다. 프로 첫 해부터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기 때문에 새로운 동기가 필요했고, 미국 무대를 택하게 됐다. 이미나는 “첫 해부터 너무 이른 성취감을 느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나태해진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큰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고 설명했다.

12년 LPGA 투어 생활 중 모든 게 낯설었던 루키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는 “서부에서 동부까지 이틀 밤을 꼬박 세우며 차를 타고 이동한 기억도 있다. 아빠가 운전을 했고, 차 안에서 비디오로 한국 드라마 등을 보면서 지루한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미국 내에서 이동할 때 주로 자동차를 이용했다. 대회 출전을 위해 10~15시간을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첫 해 낯선 환경과 의사소통 등의 어려움을 겪었던 이미나는 투어 적응에도 애를 먹었다. 개막 8개 대회에서 7차례나 컷 탈락했다. 그는 “너무 경기가 잘 되지 않았고 힘들었던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 유턴까지 고민했다. 중반부터 조금씩 경기가 풀렸고 우승 후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회고했다. 2005년 7월 캐나다 여자오픈에서의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다.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 잘 쳐서 역전 우승을 한 대회였다. 원래 잘 울지 않는 편인데 그때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펑펑 울었다”며 “우승 인터뷰도 갑작스럽게 하게 됐는데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재미동포 팬의 도움을 받아서 한 것 같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웃었다.

2002년 프로 데뷔해처럼 이미나는 LPGA 투어에서도 2005년 첫 해에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첫 해 28개 대회에 출전해 87만 달러를 벌었고, 상금 순위 7위에 올랐다. 12년 투어 생활 중 상금 순위가 가장 높았던 해였다. 이미나는 “첫 승을 한 뒤에는 또다시 우승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고, 아무 것도 모른 채 대회만 집중해서 좋은 성적이 났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볼 스트라이킹이 좋았던 이미나는 2006년 하와이에서 열린 필즈 오픈에서 LPGA 투어 2승을 수확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큰 부상이 없었고, 빼어난 체력 관리로 2015년까지 매해 20개 이상 대회에 출전하는 저력을 보였다. 2008년에는 투어 최다인 30경기에 출전했고, 79.8%로 페어웨이 적중률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우승을 추가하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하고 연구하며 변화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멘털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심리 상담도 받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2014년 노스텍사스 슛아웃 대회가 두고두고 아쉬웠다. 3라운드를 공동선두로 마쳤던 이미나는 모처럼 우승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결국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에 1타 뒤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미나는 “우승을 가장 간절히 원했던 대회였다. ‘다시 우승할 수 있겠구나’고 생각했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며 “아마 그때 우승을 했더라면 선수 생활을 조금 더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곱씹었다. 캐나다와 하와이에서 각각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이미나는 정작 미국 본토에서는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투어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이미나는 “2005년 신인 때는 막내여서 연습 그린에 가면 인사하기가 바빴다. 올해는 최고참이라 모두에게 인사를 받는 처지였다. 당시에 함께 투어 생활을 했던 선수들이 박세리 언니를 끝으로 모두 은퇴했다. 이제 저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 다소 설레는 듯 얘기했다.

아직까진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결혼을 위해 은퇴하는 것도 아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이미나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제2의 인생에 대한 준비를 할 참이다. 그는 “방송이나 레슨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박사 과정을 통해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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