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이 北核해결에 나선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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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반미와 친미, 남북공조와 한.미공조, 비핵(非核)과 비전(非戰)과 같은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려 있는 동안 북핵 문제는 주목해야 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간 미국이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듯이 북한 문제를 처리할 수도 있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 공허한 친미.반미 논쟁과 공조 논쟁 등에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 문제가 핵비확산 차원에서는 전 세계적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적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는 북핵 상황이 아직 위기가 아니며 이라크식으로 전쟁으로 해결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도 누차 표명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에서 동북아를 바라볼 때 한국.일본.중국이라는 부강하고 강력한 국가들이 있다. 동북아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중앙아시아나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의 분쟁지역과 다르다. 미국은 중국.일본.한국 등 부강한 국가들이 스스로의 국익을 위해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북한에 커다란 원조를 하고 있는 중국이 역내 유일한 핵 보유국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도 그렇고, 날로 부강해지는 국부를 지키기 위해서도 북한의 핵무장을 결코 용인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양자협상을 한다는 것은 역내 국가들의 힘을 활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패한 제네바합의식으로 북한의 함정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한국.일본이 포함된 다자협상으로 북핵 문제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읽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응하지 않을 미국을 양자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무장 완료"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 완료" 같은 카드를 미국에 대해 연달아 사용하고 있다. 다만 중국에 대해선 이 같은 카드가 협상용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식의 별도 설명을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은 자충수가 되고 있다. 중국 자신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보호하고 일본.한국, 나아가 대만의 핵무장이나 핵유혹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으로서는 날로 부각되는 북한의 핵무장 논의를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지난 4월 베이징(北京) 3자회담 주선에 이어 중국 외교부 다이빙궈(戴秉國) 부부장의 북한과 미국 방문 협의는 이제 드디어 중국이 북핵 문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제 진실의 시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상대로는 핵무장과 관련해 모호성을 한껏 활용할 수 있을지언정, 중국을 상대로 그러한 모호성을 전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과 국제사회 편입을 함께 이룰 수는 없다. 북한 나름의 아주 어려운 딜레마가 있지만 핵을 버리고 국제사회 편입을 택하는 쪽으로 결단을 내리길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그때 북핵.북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다. 그것이 북한도 살 길을 찾고 우리를 포함한 동북아가 평화와 번영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참여정부의 평화와 번영 정책도 바로 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일본.중국 방문도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다. 전체의 흐름을 읽지 못할 때 유감스럽게도 지엽적인 문제가 본질을 환치하게 된다. 방미 후 "과공" 시비, 방일 후 "유사법제" 시비, 방중 후 "당사자" 시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세차례에 걸친 정상외교에서 이러한 사안은 본질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일련의 정상외교는 중차대한 북핵 문제를 놓고 우리 국민의 안위와 국익을 찾아가기 위한 외교였다.

우리와 함께 북핵 문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3국의 지도자와 전략을 협의, 북핵 불용(不容)과 평화적 해결의 원칙 아래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이끌어 내는 데 있어서의 역할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우리가 친미와 반미, 남북공조와 한.미공조, 비핵과 비전 같은 이분법적인 논쟁에 집착하면 지엽적인 문제가 국익을 훼손하게 된다. 우리의 안위와 국익을 좌우할 북핵 문제는 이러한 논쟁을 뛰어넘는 새로운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영진 외교안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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