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류전형 탈락자가 합격자로…이상한 ‘신의 직장’ 특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태권도진흥재단은 2013년 3월 마케팅 전문가로 A팀장(2급)을 뽑았다. 같은 해 6월엔 경리직(6급)으로 B씨를 뽑았다. 모두 정규직인데도 별도의 공개채용 절차 없이 1명만 뽑은 특별채용 형식이었다.

추천 기사

B씨의 경우 한 달 전 실시한 정규직 공개채용 때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응시자였다. 최종합격자가 입사를 포기하자 차점자를 뽑은 게 아니라 재단 측은 B씨를 뽑았다. 이 재단은 지난해엔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으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던 C씨를 정규직 과장급(4급)으로 채용했다. 이번에도 1명 특채 형식이었다. 태권도진흥재단 측은 “B씨의 경우 응시자 중 유일하게 기관에서 사용하는 회계 프로그램 운용 경험이 있었고 C씨는 향후 재단의 대표 인물로 키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문체부 감사에서 엄중 경고를 받았다.

문체부 20개 산하기관 특별 점검
17곳서 규정 어겨 주의·경고 35건
3년간 원장이 혼자 필기시험 출제
내부 인사로만 면접위원 꾸리기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이 12일 문체부에서 20개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채용비리 점검 특별조사 결과를 받아본 결과 2012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7개 기관이 채용 관련 규정이나 지침을 위반해 35건의 주의·경고 조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가 있는 산하기관만을 놓고 실시한 감사에서 85%의 기관이 채용 규정을 어겼다는 의미다.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은 청년 구직자에겐 ‘신의 직장’으로 꼽힌다. 이 의원은 “공공기관 정규직 일자리는 안정적인 데다 문체부 산하기관은 업무 강도도 세지 않고 급여도 평균적으로 높다”며 “청년 구직자들에겐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입사경쟁률이 수백대 1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관들은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인사 관련 지침과 내부 인사규정 등에 따라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야 하고 외부 전문가를 반드시 심사위원단에 참여시켜야 한다.

하지만 정동극장·한국콘텐츠진흥원·국제방송교류재단은 내부위원만으로 면접위원을 꾸렸다. 이들 기관은 근무 중이던 인턴의 다수가 정규직 채용에 응시하는데도 이들과 함께 일했던 부서장들을 논술·토론·필기전형 등의 심사위원으로 참여시켜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최근 3년간 필기시험 출제를 모두 원장이 혼자 출제했다가 기관주의를 받았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도 실기시험 출제를 특정 1인(행정지원팀장)이 맡아 하다 기관주의를 받았다. 두 기관은 출제자로부터 받아야 할 보안각서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기사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채용 인원 등을 당초 계획과 달리 임의로 변경했다가 적발됐다. 인턴 경력자에게 전형마다 최대 10점(100점 만점)씩 가점을 줘 인턴 경력자를 지나치게 우대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 의원은 “공공기관에서 채용비리가 있을 경우 청년들의 자괴감·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부처 산하기관은 더욱 채용 절차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