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수·착실” 대신 “월 1회 독서 봉사”…객관적인 학생부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7월 서울 일반고의 학부모 김모(48)씨는 고2인 아들의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를 열람했다. 수상 경력에는 ‘교내 청소년 과학탐구대회에서 동상 수상’, 종합 의견에는 ‘봉사정신이 투철해 매달 봉사활동을 꾸준히 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학생부가 내가 학교 다니던 30년 전 수준이다. ‘우수하다’ ‘착하다’고만 써 있는 학생을 뽑아줄 대학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기록 횟수도 늘려
실제 활동 내용 구체적으로 기술
“바로바로 써야 설득력” 긍정 반응
교사 “업무 너무 늘어 문제” 비판도

올해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이 각각 중1, 고1이 되는 2018년부터 수상 실적 위주의 결과 중심 또는 ‘우수’ ‘착실’ 같은 주관적 표현 중심의 학생부 기록이 과정 중심의 객관적 기록으로 바뀐다.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된 데다 새 개정교육과정에서 발표·토론 등 학생 참여가 강조되는 추세가 반영됐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도 학생부 기술에서 구체성과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대학 등의 비판도 고려됐다.

기사 이미지

교육부 관계자는 “바뀌는 학생부는 학생의 활동과 성장을 과정 중심으로 기록한다”고 말했다. 과정 중심의 기록이란 구체적으로 한 해 1~2회 작성하는 학생부 기록 횟수를 수업 내용과 과목에 맞게 늘리고 발표나 토론 등 학생이 실제 활동한 내용을 기반으로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는 “학기 중 수시로 쓴 내용을 바탕으로 학년 말 종합평가를 작성하도록 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에 대한 교사 개인의 주관적 표현도 통계나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객관적 표현으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교사들은 ‘학교 생활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리더십이 좋다’고 기술하는 대신 ‘가급적 통계를 바탕으로 발표 자료를 만들고 반대 의견도 차분하게 설득했다’고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고교 교사와 입학사정관 등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중대 한양대 입학사정관은 “학생부 전형에 강한 학교들은 이미 1년에 3~8번으로 기록 시기를 나눠 성장 과정을 단계적으로 쓴다. 사실·활동을 기반으로 하면 학부모가 특정 표현을 써 달라고 하거나 사교육 업체에서 써 오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곤 경남 삼천포고 교사 역시 “활동을 마치고 바로 기록해야 정확하고, 수업 내용이나 과제를 바탕으로 써야 설득력도 높다”고 말했다. 반대로 교사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안성환 대진고 교사는 “고교 생활을 의미 있게 보냈는지 써야 하는데 대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교사의 자율성과 평가권을 보장해야 수업의 질도 높아지고 학생의 참여도 활발해진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일반고 교사는 “업무가 지나치게 늘어나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교육부는 올해 말까지 학생부 기록 개선 방안과 관련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세부 지침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후 교사와 학부모 대상 설명회를 연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고교의 격차를 인정하고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 교사의 주관적 평가보다 객관적 사실 위주로 기록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경·박형수·전민희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