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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수사권 독립을 원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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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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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어쩌면 다시 안 올지 모른다. 잔꾀 부리지 않고 정성껏 가속 페달을 밟으면 천덕꾸러기 신세를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이 꽤 커 보인다. 이달 21일 일흔한 번째 생일을 맞는 경찰 말이다. 조직의 숙원이다시피 한 수사권 독립을 꾀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여건도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하게 조성돼 있다.

백남기 사건과 ‘코너링’ 발언
경찰 신뢰 찬물 끼얹을 수도

세 살 어린 검찰 조직을 평생 상전으로 모시면서도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던 게 대한민국 경찰의 서글픈 신세다. 그랬던 경찰에게 뜻하지 않은 서광(曙光)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검사들의 잇따른 비리와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죽을 쑤면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계속된 사과도 이미 떠나버린 민심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시민들은 검찰을 부패한 절대 권력에 비유하며 대안 찾기에 나섰다. 눈치 빠른 정치권은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전담할 수사처 구성을 위한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수사처도 검찰 출신들을 위한 또 다른 ‘인사 비상구’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행정부의 검찰이 아닌 입법부의 검찰이란 비판과 함께 잠시 주춤거리는 형국이다.

새로운 제도보다는 기존의 수사 시스템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대두되는 이유다. 경찰에게도 일정 부분 수사권을 보장하자는 얘기다. 경찰 조직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최근 경찰 조직과 관련이 있는 단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검찰의 독점적 수사구조를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입각해 검찰은 기소를, 권력형 범죄는 공수처에서, 일반 형사사건은 경찰이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2011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을 보면 경찰도 어엿한 수사의 주체로 명시됐다. 수사권이 보장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검찰의 실무 책임자였던 홍만표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수사권 조정안에 불만을 품고 옷을 벗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검사의 수사 지휘권’까지는 뚫지 못했다.

경찰이 실질적으로 수사권 독립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 상황에선 무엇보다 여론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불신을 없애야 하지 않을까.

교통사고가 났을 때 담당 경찰관에게 성의표시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거란 불안감, 집에 도둑이 들어도 피해조사를 잘해 달라고 경찰청의 높은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겐 지금까지 ‘가까이 있는 친절한 경찰관’보다는 ‘투 캅스’의 이미지가 더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번 각인된 생각과 습성은 쉽게 버리기 어렵다. 경찰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들이 왜 검찰의 독단적인 권력행사에 염증을 느끼게 됐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그런데 최근 경찰 간부들의 언행을 보면 별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겠다. 서로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자기 조직의 문제에는 관대하고, 외부의 비판 여론에는 눈감고, 권력에는 한없이 충성하는 듯한 모습은 또 하나의 ‘데칼코마니’로 와 닿는다.

야당이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고 백남기씨 사건과 관련해 공권력의 과잉진압 논란이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지만 경찰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시민들은 엄정한 공권력 집행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체적 진실까지 눈감아 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일 것이다. 국회에 당시 시위 상황이 담긴 문건을 제출하면서 백씨와 관련된 부분을 쏙 빼는 옹졸함을 보여선 안 된다.

정권 실세의 아들을 운전병으로 임명해 놓고는 “코너링이 좋아서 그랬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처지가 궁박하고 답답해도 그나마 남아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을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생각한다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듯한 코너링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경찰의 장애물은 어디에 있는가. 외부인가, 내부인가.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