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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 유전자’ 찾아낸 노벨 과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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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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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시즌이 한창 절정이다. 과학상 수상자들의 언어는 꾸밈없는 건조함이 매력이다. 올해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71·도쿄공업대) 교수는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이 세상에 매우 많다.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길 바란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직설적 표현에 지적 탐구의 재미가 녹아 있다. 미지의 세상을 향한 설렘도 묻어난다. 노벨상 과학자들의 연구 인생엔 역설과 유머, 정성이 스며들었다.

그는 1988년 43세의 느지막한 나이에 조교수가 돼 독립적 연구자로서 첫발을 뗐다. 그리고 28년 뒤 노벨상을 받게 된 세포 내 특별한 현상을 인류 최초로 발견한다. 그것은 우연이었다. 오스미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과거 본 적이 없는 작은 알갱이가 생겨나 격렬하게 춤추듯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뭔가 중요한 게 아닐까’라는 호기심을 갖게 됐다.” 오스미는 세포 속에서 펼쳐지는 춤의 세계에 빠졌다. 그날 몇 시간이고 현미경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격렬하게 춤추는 알갱이’들은 마치 남미 사람들이 혼을 빼놓을 듯이 속도감 있게 벌이는 춤의 축제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그는 다이내믹스의 비밀을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까지 5년이란 세월이 더 필요했다. 마침내 오스미는 우연적 현상으로부터 인체 내에서 벌어지는 생존·건강의 필수 법칙을 추출해냈다. 5년간 길고 지루한 실험 여행을 버티게 한 힘은 춤추는 알갱이들의 매혹이었다.

알갱이의 춤은 알고 보니 카리브해 원주민에게 있었다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 문화가 세포라는 미세한 세계에서 전개되는 것과 같았다. 카니발리즘은 자기 종족을 잡아먹는 식인(食人) 풍습이다. 노벨상 공식 조직위원회의 홈페이지는 오스미의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인간의 몸은 항상 카니발리즘, 즉 자기 해체를 반복한다. 몸은 해체와 형성 사이에서 정교하게 균형을 찾는다.… ‘스스로 잡아먹기(self-eating)’는 썩 좋게 들리는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오토퍼지(Autophasy·자가포식)는 우리 몸이 생존하기 위해 자연이 고안해낸 방어법이다.”

오늘도 알갱이는 자기를 파괴하기 위해 춤을 춘다. 파괴의 타깃은 기아나 감염 같은 외부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하는 내부 노폐물이다. 세포는 축적된 노폐물을 비닐 종이 같은 소기관으로 둘러싸서 쓰레기 소각장 역할을 하는 리소좀(Lysosome)으로 이동시킨다. 리소좀은 노폐물을 분해시키면서 아미노산이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한다. 이 경로는 인간 사회의 ‘쓰레기 재활용(Recycling waste)’ 구조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자기 파괴가 진행되지 않으면 변종 단백질(노폐물)이 쌓인다. 변종 단백질은 암·치매·파킨슨병의 원인이 된다. 새로운 세포의 탄생도 가로막는다.

인체의 자기 파괴 스토리를 취재하다 보니 인간 사회의 자기 파괴는 왜 이뤄지지 않을까에 생각이 미친다. 현대 인류사의 변종 단백질인 북한의 전체주의 가족정권은 왜 70년이 다 되도록 파괴되지 않는가. 정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증오와 적대성을 부추기는 30년 된 한국 헌법은 왜 개정될 동력이 없는 걸까. 인간 개개인은 멀쩡한데 집단관계로 뭉쳐지면 정파 이익에 사로잡히고 마는 병적인 욕망체계는 왜 개선되지 않는 걸까. 개별 인간 차원에서 기아에서 벗어나고 질병에서 자유롭고 스트레스의 부작용을 이겨내는 영생의 욕구는 머지않아 충족될 듯하다. 세포의 자기 파괴적 재순환에 참여하는 15종 유전자를 적절하게 조절하면 된다. 일종의 영생 유전자 세트다. 이 15종 유전자는 오스미 교수가 5년간 3만8000종의 돌연변이 세포를 만들어 일일이 검사·비교하는 지난한 탐구 과정에서 찾아냈다. 인간 공동체 차원에서도 초기의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고통스러운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 오스미 같은 연구자가 필요하다. 인류는 영생 유전자까지 개발할 정도로 개인의 행복 연구에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공동체의 행복 추구엔 얼마만큼 비용을 들이고 있을까.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