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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유커에 목 매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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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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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유커(遊客·중국 관광객)가 돌아왔다.” 요 며칠 관광·유통업계가 희색이다. 10월 1일부터 일주일, 중국은 국경절 연휴다. 마침 ‘코리아 세일 페스타’까지 겹쳤다. 중국인들이 찾는 유명 브랜드 매출은 지난해보다 20~30% 늘었다고 한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왠지 찜찜하다. 따져보니 이유가 꽤 됐다.

싸구려 관광객 좋아하다
싸구려 나라 될까 걱정

그중 하나는 정서적인 것이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중국에 온 기분’을 느낀 지 오래다. 한글이라곤 한 글자도 없는 안내문은 기본이요, 매장 안내원이 중국어로 인사하는 경우도 잦다. “한국인은 할인 안 돼요”는 상식이다. 무례한 유커도 많다. 대뜸 중국말로 묻고 못 알아들으면 비아냥댄다. “중국말도 모르네.” 이게 명동 한복판인지 베이징 시내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많다’는 정치·경제학적으로 ‘옳다’와 동의어다. 유커는 많다. 많아지면 세진다. 숫자로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유커는 1억3500만 명, 세계를 누비며 126조4354억원을 썼다. 세계 1위다. 그러니 일본부터 태국·홍콩·대만까지 유커 잡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한국엔 611만 명이 와서 15조7600억원을 썼다. 올해 추경 예산보다 많다. 내수 절벽 한국 경제엔 가뭄에 단비다. 국가적으로 유치 전략을 세울 만하다. 그러나 보이는 숫자가 모두 진실은 아니다. 유커가 쓴 돈 중 한국에 떨어진 돈은 많아야 20%라는 게 관광업계 추산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유커가 낸 돈은 대부분 중국 여행·항공사가 도로 가져간다. 심지어 유커의 쇼핑 마진까지 챙긴다. 마진의 70%는 기본, 90%까지 떼간다. 한국은 낙전 줍기, 헛물만 켜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관광 산업은 흔히 무공해·황금알로 불린다. 꼭 진실은 아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세르주 라트슈는 “선진국의 관광이 남반구의 ‘발전’을 돕는다는 가설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경제에 도움은 찔끔 주면서 해당 국가의 질서와 생활, 환경과 문화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제3세계 지원 비영리단체 ‘아르티장 뒤 몽드’는 “1000유로짜리 관광 상품을 팔았을 때 방문 국가에 떨어지는 돈은 200유로 미만”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톰킨스는 “(단체)관광은 환경과 안전면에서 지구적 공적 1호로 간주될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유커는 지난해 1인당 1만4000위안(약 258만원)을 썼다. 그중 약 70%가 쇼핑이다. 그 쇼핑이란 게 화장품 몇 개, 특산품 몇 개 빼면 주로 이탈리아, 프랑스 명품 팔아주는 게 대부분이다. 게다가 인사동 기념품마저 중국산으로 대체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돈을 벌자고 우리는 도심을 중국 관광객 버스에 내주고 청계천을 유커의 흡연 공간, 북촌을 유커의 산책로로 내주고 있다. 중국인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지금의 유커 특수는 결코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오는 손님을 막는 건 대안이 아니다. 답은 다 안다. 관광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단체 관광 위주의 유커 대신 싼커(散客·자유여행객)가 더 오게 하자. 싼커는 많이 쓰고 멋스럽게 놀 줄 안다. 그들을 오게 하는 건 맛과 멋과 문화다. 이미 중국 여행객의 80%는 싼커다. 적자·싸구려 관광엔 싸구려 관광객만 꼬일 뿐이다. 중국은 비자 장사 꼬박꼬박 하는데 우리만 무비자로 유커 유치에 매달리는 일부터 그만두자. 나라 꼴만 싸구려가 될 뿐이다.

내친김에 더 크게 보자. 유커에 앞서 차이나 머니가 오게 하자. 돈이 오면 사람은 저절로 온다. 한국을 투자하고 싶은 나라, 본받고 싶은 나라,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면 된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2년 전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의 사정 칼날을 피해 중국의 검은돈이 대륙을 탈출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 인수합병(M&A) 1위에 오르고 세계 부동산 싹쓸이에 나선 것도 이런 돈들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만 9000조원이 넘는다. 이 돈부터 잡아야 한다. 돈이 오면 사람은 저절로 따라온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을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