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비난 강박증’에 걸린 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기사 이미지

양선희
논설위원

“이러다간 우리 후세대에 눈먼 아이들이 많이 태어날까 두렵다.” 한 친구가 뜬금없이 한 말이다. 열혈 기독교 신자인 그는 성경에 ‘보상을 원해 비난하는 자의 자손들은 눈이 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고 했다. 원한 관계도 없는 대상을 향해 자신의 분노·질투심·우월감 혹은 단지 욕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려 비난하는 행위는 결국 심리적 보상을 노린 것이므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 얘기는 개그맨 정형돈의 복귀 소식에 쏟아진 비난이 도를 넘었다며 시작됐다. 그의 복귀가 왜 비난받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검색해 봤다. 어이없게도 ‘무한도전’으로 복귀하지 않았다고, 멀쩡해 보이는데 진짜 아팠던 게 맞느냐고 비난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처럼 대중이 무차별로 비난하기에 참여하는 ‘비난 습관 사회’로 달리고 있다. 연예인·스포츠 스타들은 밑도 끝도 없는 악플에 시달리고, 대통령을 향한 욕지거리도 일상화됐고, 일반인들의 사생활까지 털며 비난하고 조롱하는 ‘~패치’류가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마치 ‘비난 강박증’에 걸린 듯한 대중들에게 인터넷·모바일·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초연결사회 기술이 최적의 환경이 됐다. 우리 사회는 최첨단 기술을 욕과 비난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소모한다.

성경뿐 아니라 법정 스님도 남을 비난하는 자들은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경고하는 등 거의 모든 종교가 비난의 죄악과 벌을 고발하는데도 비난하는 자들의 입을 막진 못한다. 원래 비난은 영장류의 본능이란다. 심리학자들이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니 그들도 책임을 회피하고 다른 대상을 비난하는 걸 예사로 하더란다. 인간이 책임을 회피하고 남을 비난하며 남의 공을 가로채려는 것은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의 결과라는 게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본능대로 하면 파괴적이 된다는 거다. 본능은 이성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세상이 평화롭다. 조직심리 전문가인 밴 대트너는 저서 『비난게임』에서 “조직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문제들은 모두 비난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비난의 태도는 전염성이 강해 누군가 비난을 시작하면 비난이 조직 전체에 퍼져 비난의 악순환에 걸려들고 조직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조직을 나라로 바꾸어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비난의 악순환에 걸려든 걸로 보인다.

요즘 비난의 발설자들은 대개 평범한 사람이다. 개인 사생활을 터는 사이트 강남패치 운영자는 잡고 보니 24세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선량한 사람이 상황만 주어지면 순식간에 악인으로 변한다는 걸 증명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라는 게 있다. 평범한 학생들을 교도관과 죄수로 나누기만 했는데 교도관 역할의 학생들이 가학적이고 악랄하게 변하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다. 이 실험을 주도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악인은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상황과 시스템이 만들고, 썩은 상자에 들어가면 선량한 사람조차 사악하게 돌변할 수 있다”고 했다.

도를 넘은 우리 사회 비난문화는 ‘댓글러’만 타일러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싶다. ‘썩은 상자’를 깨부숴야 한다. 짐바르도는 인간에겐 ‘악의 평범성’뿐 아니라 ‘영웅적 행위의 평범성’도 내재한다고 했다. 악의를 자각하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악에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행위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대트너는 ‘책임질 줄 아는 리더십’이 비난게임을 끝낼 수 있다고 했다. 리더가 외적 요인에 비난을 돌리지 않고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 조직이 혁신됐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어쩌면 우린 두 개만 잘하면 이 비난 습관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 탓하기가 습관화된 대통령과 정부, 국회의원 등 리더들이 “내 탓이오”를 외치고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 또 우리 스스로 잠든 영웅적 행위의 평범성을 깨워 비난의 습관에서 벗어나려는 일.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비난하기에 쏟는 사회에 사는 건 불행한 일이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