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평준화 사실상 백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평준화지역의 고교입시에서 선 지원-후 선발을 허용하고 학교별시험을 부활시킨 교육개혁심의회의「고교평준화정책 개선방안」은 사실상의 고교평준화정책 백지화를 뜻한다.
선 시험-후 배정에 의한 현행일괄 배정방식을 병행, 선택적이기는 하지만 학군 내 대부분의 우수고교가 지원자를 대상으로 학생을 선발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의회의 이번 개선 방안은 또 선 지원-후 선발사립고교에 대해서는 납입금 책정을 자율화하고 모든 고교입시에는 반드시 중학 3년간의 내신성적을 반영, 전형토록 의무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74년부터 점차 확대 시행돼 온 고교평준화정책이 평준화에만 치중한 나머지 교육의 수월성(수월성)이나 중학교육정상운영을 외면한 채 하향평준화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고교별 입시에 의해 학생을 선발하게 되고 중학교 내신성적이 임시에 반영될 경우 비록 학군이란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평준화 이전의 고교입시를 둘러싼「일류병」내지「임시지옥」이 되살아나고 중학교 교실에 내신으로 인한 치맛바람이 생겨날 우려도 없지 않다.
이에 불구, 심의 회가 이 같은 개선방안을 제시한 것은 중등교육에도 자유경쟁의 원리를 도입해 교육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시행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심의 회는 29일 개선방안을 최종안으로 확정하면서 문교부에 넘겨 구체적인 시행방법과 실시시기를 확정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개선방안이 중학교 3년간의 내신성적반영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교부가 방침을 확정하더라도 빨라야 87학년도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부터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심의 회는 전망하고 있다.

<평준화의 공과>
74년부터 서울·부산을 시작으로 처음실시, 86년 현재 전국 21개 도시로 확대돼 전국 고입정원의 58%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고교 평준화정책은 그 동안 교육기회확대에 기여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교원 및 시설평준화가 따르지 못한 채 우수고교를 비 우수고교수준으로 끌어내리기만 하는 하향평준화란 비판을 받아 왔다.
고교평준화제도는 ▲고교입시의 과열화를 막아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를 바로잡고 ▲계속 누적되는 재수생을 줄이고 과열과외로 인한 사회계층간의 위화감을 없애며 ▲고등학교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한편 ▲일류고교를 찾아 도시로 집중하는 인구를 분산시키는데 목적을 두었었다.
과열과외가 표면상으로 없어지게 됨에 따라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도 크게 줄었으며 고등학교간의 세칭 일류·3류 의식이 해소됐다.
이밖에도「좋은 학교」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학생인구의 도시집중현상이 크게 줄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평준화정책은 교원·시설·재정 등 교육여건이 평준화되지 않은 채 우수한 학생과 학습부진학생이 형식적 선발고사에 의한 추첨배정으로 함께 입학,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게 됨으로써 우수학생은 학습의욕이 저하되고 학습부진학생은 소외감이 더욱 심해졌고 교사들의 학습지도에도 부담을 안겨 주게 되어「하향 평준화」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이밖에 학생선발방법 및 등록금 책정이 획일화 돼 있어 사립학교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위축됐고 사립학교에 대한 민간투자가 줄어들어 사학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왔다.
특히 이제도 실시로 말미암아 대학교육의 가수요가 늘어 대입 경쟁률을 더욱 가중시킬 수밖에 없게 됐다.
교 개심이 평준화정책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이다.

<개선방향>
교 개심은 우선 교육수준의 질적 하향을 막기 위해 고교평준화 정책의 획일 적용을 포기, 학군 내에서 희망하는 일반계 고교는 학교가 자체적으로 시험을 치러 학생을 뽑게 한 것이다. 우수학생·학습부진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공부함으로써 빚어지는 실력의 하향평준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개선 안은 고교학력의 실력저하 현상에는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겠지만 학교별로 시험을 치르는데 따라 중학교육이 옛날처럼 다시 입시위주교육이 될 수밖에 없는 위험을 안고 있다.
또 서울 강남지역 등 이른바 신 명문교가 몰려 있는 학군에는 사람들이 몰려 심각한 인구집중 현상을 빚을 우려가 없지 않아 학군의 광역화등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우수한 학생들이 특정학교에 집중하는데 따른 학교간의 격차가 다시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교 개심이 이런 부작용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중학 내신 성적을 고교선발에 반영시키는 것이다.
또 중학내신 성적의 고교입시 반영에 따른 내신성적 관리의 공정성여부 및「치맛바람」의 최소화도 새로운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인 중등교육의 의무화 현상을 과연 앞으로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김종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