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복판의 소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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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의 군사잡지 제인즈 디펜스 위클리 최근호는 원산항이 곧「제2의 캄란 만」이 될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것은 한반도 복판의 원산이 소련 극동 함대의 한 기지로 조차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거기엔 소련 해군의 함정과 항공기가 머무르게 된다.
소련은 79년이래 월남의 캄란 항을 빌어 거기에 20척의 잠수함과 다수의 폭격기를 주둔시켜 놓았다.
이것은 필리핀의 미군 기지들과 중공의 남양함대를 견제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소련 극동함대와 연결, 서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미군과대치하는 전략적 요지가 돼 있다.
원산항 조차설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조차(Lease)는 비록 시한부의 경우라 해도 제국주의 팽창시기에 열강들에 의해 약소국이 강요당했던 과거의 피 침 경험을 연상케 하는 불쾌한 일이다.
더구나 소련의 원산항조차는 우리에게 노일전쟁 직전 러시아의 요구에 의한 마산 항(요구미) 조차를 상기시켜 불길한 느낌마저 갖게 된다.
소련군이 원산에 들어오게 되면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이 파괴되고, 긴장을 고조시켜 현재의 무장평화마저 위협받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위협적인 일이다.
물론 기지의 조차가 곧 군대의 주둔은 아니다. 따라서 원산항에 소련군이 머무른다 해도 그들이 원산이외의 북한에서 북한을 위해 어떤 군사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61년이래 북한과 소련은 「우호협력 상호 원조 조약」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이 조약 제 1조는 『체 약 일방이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체 약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 군사 및 기타의 원조를 제공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원산에 와 있는 모든 소련의 함정과 항공기는 한반도 유사시 즉각 작전에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게 되면 이 땅은 자동적으로 미소의 교전구역이 될 수밖에 없다.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소련은 북한에 미그-23 전폭기를 제공한 대가로 북한 상공 비행 권을 얻었고 다시 원산과 남포의 군함 기항 권을 따냈다.
이제 원산을 조차한 다음 남포항조차를 기도할지도 모른다.
원산은 동해에서의 북한 해군 제1기지다. 이것을 소련이 사용하게 되면 일본의 미군기지를 견제 할 수 있다. 남포는 서해의 제1기지로서 중공의 북양 함대를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미국·중공·일본을 가상적으로 삼고 있는 소련이 전략상 이두항의 조차를 기도한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다.
지금은 남북이 화해와 대화를 추구할 때이지 결코 부질없는 군사력경쟁을 확대해 나갈 때는 아니다.
이럴 때 평양이 외세를 끌어들이고 기지를 내준다는 것은 이 지역의 전쟁위기를 증대시키고 민족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가는 일임을 평양 당국자들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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