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이틀 전 사망한 '호세 페르난데스' 기리며 승리 바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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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말린스파크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와 마이애미 말린스의 경기.

마이애미 선수들은 하나같이 등번호 16번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이틀 전 23세의 나이에 사고로 사망한 팀 동료인 투수 호세 페르난데스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쿠바 출신 페르난데스는 15세인 2008년 어머니와 함께 보트를 타고 모국을 떠났다. 세 번이나 망명에 실패해 학교와 야구 팀에서도 쫓겨났던 그에게는 기적같은 탈출이었다. 2011년 마이애미에 입단한 그는 결국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최고 시속 159㎞의 직구와 빠르면서도 위력적인 커브를 앞세워 싱글A를 거쳐 2년 만에 곧장 빅리거가 된 것이다. 2013시즌 성적은 12승6패 평균자책점 2.19. 같은 해 14승을 거둔 류현진(28·LA 다저스)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신인왕까지 차지했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아 2년간 10승에 그쳤던 그는 올 시즌 16승(8패·평균자책점 2.86)을 거두며 멋지게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26일 오전 마이애미 앞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보트 낚시를 즐겼던 그가 탄 배가 바위에 충돌해 전복되면서 사망한 것이다. 돈 매팅리 마이애미 감독이 직전 등판인 워싱턴전에서 8이닝을 던진 그를 위해 등판일을 하루 미뤘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페르난데스의 여자친구가 임신해 내년 1월 출산을 앞둔 사실이 알려져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마이애미 구단은 26일 열릴 예정이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을 취소시켰다. 27일에는 페르난데스의 등번호 '16'을 영구결번으로 정했다. 지난 1993년 창단한 마이애미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그 전까지 마이애미 선수들이 쓸 수 없는 번호는 MLB 30개 구단 공통 결번인 42번(최초의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의 번호) 뿐이었다. 27일 메츠전에서는 모든 선수가 페르난데스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쿠바 출신인 메츠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는 마이애미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이애미 선수들은 경기 전 무릎을 꿇고 마운드에 16을 새겼다.

마이애미 1번타자 디 고든(28)은 독특한 방식으로 친구를 보냈다. 좌타자이면서도 1회 말 첫 타석에서 3루쪽 오른타자 배터박스에 선 것이다. 우타자인 페르난데스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젖은 눈으로 초구를 보낸 고든은 좌타자용 헬멧을 바꿔쓴 뒤 2구째부터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놀라운 장면은 그 뒤에 나왔다. 고든이 선발 바르톨로 콜론의 3구째를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터뜨린 것이다. 고든은 2014년과 지난해, 2년 연속 도루왕에 올랐지만 통산 548경기에서 홈런 8개를 친 똑딱이 타자다. 하지만 친구를 기리는 경기에서 시즌 첫 홈런을 때려냈다. 고든은 홈을 밟은 뒤 오른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세리머니를 했다. 더그아웃에 들어간 그는 결국 동료들을 얼싸안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마이애미는 이날 경기에서 7-3으로 이겼다. 고든은 경기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페르난데스를 위해서 처음엔 우타자 배터박스에 섰다. 페르난데스에게 '나는 너를 사랑했고 그리워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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