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태광의미생물이야기

발효 김치와 비빔밥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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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병해 세계가 공포에 떨 때 신기하게도 한국인은 안전했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다가 한국인이 먹는 김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배추김치를 만드는 유산균의 유전체를 분석했을 때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김치 미생물 유전체에서 여러 가지 병원균을 예방 또는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의 생산이 가능한 유전자군을 발견한 것이다. 또 김치 유산균을 따로 키워 병원성 균에 적용한 결과 강한 항생 효과도 확인했다. 김치의 이러한 특질이 사스나 조류인플루엔자(AI)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외에 김치는 건강식품이란 인식이 세계인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도대체 김치엔 어떤 성분이 있기에 건강에 좋을까. 김치를 만드는 주원료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생물에 의한 발효산물인 유기산과 비타민을 포함한 생리활성 물질들이 그 답이다. 김치는 주로 류코노스톡.락토바실루스.페디오코쿠스.바이젤라와 같은 우리가 마시는 발효유를 만드는 유산균종에 의해 발효된다. 김치 유산균은 발효하면서 원료 내에 잡균을 죽여 김치를 안전한 식품으로 만든다. 실험에 의하면 김치가 충분히 발효하면 한때 문제가 됐던 기생충도 죽는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면 김치에는 얼마나 많은 유산균이 있는 것일까. 대략 1g의 김치에 8억 마리 이상의 유산균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밥을 먹을 때 한쪽의 김치만 먹어도 최소한 40억 마리 이상의 유산균을 먹는 셈이다. 이렇게 먹은 유산균은 사람의 대장 내에서 정상적인 미생물의 분포를 유지시켜 병원균이 발붙일 수 없게 한다. 장내에 있는 유해 발암물질이나 콜레스테롤을 유산균이 흡수해 대변과 함께 체외로 배출시키기 때문에 성인병을 예방한다. 유럽.일본 등지에서는 야채를 단지 초에 절여 먹었는데, 김치를 미생물에 발효한 조상의 지혜는 오늘날의 바이오에 터전을 만든 것과 같다.

현재 김치 수출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수출을 늘리려면 김치 유산균들의 맛과 효능의 비결을 과학화해 품질을 보다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김치 미생물 유전체의 정보로부터 다양한 식의약품 개발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미생물을 이용한 김치 발효야말로 바이오 분야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밑거름인 셈이다. 김치를 담그는 한국인은 이미 모두 미생물학자이고 바이오의 전문가다.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바이오.정보.기계기술 등을 함께 사용하는 융합기술의 시대라고 말한다. 융합의 요체는 다른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들 수 있는 데 있다. 서양에서는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즐겨 먹는데 이 경우 빵 사이에 햄.야채 등을 층층이 넣어 만든다. 완전히 섞여 융합된 상태는 아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비빔밥은 어떤가. 밥에 온갖 재료를 섞는다. 융합해 새로운 맛,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분명 미래를 지향하는 융합기술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다. 비빔밥의 종류도 혼합하는 재료에 따라 야채.산채.김치.콩나물.해물 등 수없이 많다.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유형의 비빔밥을 만들 수도 있다.

자! 이만하면 21세기가 바이오이든, 극미세한 나노이든, 융합이든 어떤 장르의 시대라도 분명 한국인이 주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 피에 흐르고 있는 김치와 비빔밥의 과학기술적 끼를 마음껏 발휘해 21세기로 나아가자.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생물유전체 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