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걸러 내 헌특 장애물 제거|여-야의 국회상위 대응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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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주부터 열리는 5개 국회상위는 부천사건·한-미 통상문제 등 다룰 사안의 성격과 헌특이 갓 가동했다는 시기에 열린다는 점 등에서 주목되고 있다. 또 이번 상위는 9월 정기국회에 앞서 현안들을 일차 거른다는 성격도 있다. 여야는 각기 상위전략을 마련하고 있으나 삼복 중이어서 그런지 쟁점의 중요성에 비해 대응자세는 다소 풀려 있다는 인상이다.
이번 상임위에 임하는 민정당의 기본입장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현안들이 개헌특위의 원활한 운영에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충분히 거르겠다는 것이다.
안병규 수석 부 총무는『숨기거나 덮겠다는 것이 아니라 따질 것은 따지고, 밝힐 것은 밝힌 다는 게 우리당의 입장』이라고 설명.
민정 당으로서는 이번 상위의 현안들이 부천경찰서사건, 양담배 수입, 시국선언교수에 대한 불이익조치 등 모두 골치 아픈 성격이어서 부담이 크다.
게다가 내년에 예상되는 선거에 대비, 표를 의식해야 할 이 시기에 바람직스럽지 못한 사건들이 터져 민정당의 입장에서는 이번 상임위를 통해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할 처지여서 스스로도 정부측을 향해 목청을 높여야 할 형편이다.
최근 열린 정책협의회에서 의원들은『정부가 잘못한 것을 당이 뒤집어써서는 안 된다』며 장관인책론도 상당히 제기될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부천사건에 대해서는 내놓고 성토는 않지만 많은 의원들이 당국의 초기대응이 졸렬했다고 불만을 보인다.
무역문제에 대해서도 지역구 사정과 관련된 몇몇 의원은 이미『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까지 언급했던 정도이므로 이번에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일 전망이어서 이래저래 이번에는 여당의원들의 발언수위도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어차피 여권의 속성상「한계」는 있을 것이고 야당의 공세에「숟가락 하나 더 올려놓는 격」이 되지 않겠느냐고 한 소식통은 분석.
결국 각종 현안들에 대해 비등하는 여론을 회피하지 않고 국회라는 장을 통해 한편으로는 정부를 추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측에 해명의 기회를 줌으로써「정리」를 하는 게 앞으로 당에 유리하다는 판단 위에 이번 상임위에 임하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부천서 사건은 야당 측에 대해 할말은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되 야당 측의 「저속한 의도」가보이면 짚고 넘어간다는 전략.
우선 적극적인 질문을 통해 검찰수사의 진실성 및 타당성을「추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여성의「모든 것」이 관련된 사건을 이용, 정치공세를 벌이려는 저의가 무엇인지를 따진다는 것.
즉 당사자의 고소장도 접수되기 전에 야권주위에「이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식의 유인물이 나돈 것은 바로 인권을 빙자해 인권을 짓밟는 행위라는 점을 지적할 방침.
심명보 대변인은『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볼 때 한 여성을 정치 제물로 삼아서야 되겠느냐』고 반문.
민정당은 이와 함께 정부측이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안이하게 대처, 물의를 증폭시킨 점도 짚고 넘어가겠다는 방침.
많은 의원들은 초기에 사건진상을 털어놨으면 이 같은 부담은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결국 최근의 고위 당정회의에서 정부측이『성폭행부분은 자신 있다』고 강조해『혹시나…』하는 우려는 상당히 없어지고 사건전모에 대한 시시비비를 철저히 가리겠다는 게 민정당의 분위기.
양담배수입·원 화의 평가절상압력 등 한미무역현안에 대해서는 △개방의 불가피성에 대한 정부측 해명을 유도하되 △협상방법이나 대 국민홍보작업의 미숙성은 철저히 따지겠다는 방침.
특히 경제적인 차원만 염두에 두지 정치적 계산은 도외시하는 정부측에『국회와 국민에 대한 설득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킨다는 것.
한 의원은 개방이란 우리 이익에 맞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개방이 돼야지 지금처럼 미국의 압력에 굴복, 미국에만 개방하는 식으로 국민에게 비춰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추궁하겠다고 피력.
이성호 상공 위 간사는『이제는 국가이익수호를 위해 관련단체 등에 대한 사전설득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김중위 정책국장은『정부관리들이 미국 로비 이스트들을 직접 대면할게 아니라 관련단체와 먼저 만나도록 해 이해조정작업을 벌이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
신민당은 최근 부천서 사건, 한미통상협상일괄타결 등 굵직한 현안이 잇달아 부상했음에도 어찌된 탓인지 조직적인 대응을 못한 채 방황(?)해 온 인상이다.
대여공세보다는 오히려 당내갈등만 심화돼 특위 위원인선에 대한 잡음으로 소속의원들끼리 얼굴을 붉혔는가 하면 구속자석방 문제로 당 체면이 떨어지고 재야의「차가운 시선」을 느끼는 가운데 어정쩡한 입장을 지속해 왔던 것.
따라서 이번에 5개 상임위가 열려 한바탕 대여공세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은 신민당에는 막혔던 숨통을 터주는 좋은 계기인 셈이다.
부천사건 등 현안들을 물고 늘어져 당의 공신력과 인기를 회복하고 당내불만을 간접 해소하는 한편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특에서 기선을 잡아 보자는 것이 상임위에 임하는 신민당의 속셈이다.
신민당은 한미통상협상 일괄타결에 대해 국내산업구조의 취약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굴욕적 처사라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당 일각에서는 정권의 국내적 기반이 허약함에 따라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약하다고 주장,「선천성 면역결핍증」이 야기한 국가적 불행이라고까지 꼬집고 있다.
신민당의원들은 정부의 이런 자세가 결국 원화 평가절상압력까지 받게 되고, 현 단계에서는 정부측이『절상을 않는다』고 하지만 뱃심좋게 견뎌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신민당의원들은 특히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김만제 부총리 등 정부측이『현재까지 담배수입개방계획은 없다』『수입개방은 국내산업구조를 고려, 그 충격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을 때까지 않겠다는 방침』이라고 답변하고서도 한달 만에 개방키로 한 것을 중시해 위증여부를 추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신민당이 이번에 가장 벼르고 있는 사안은 부천 사건. 검찰수사결과가 거짓임은 물론 이 사건이 한 경찰관의 개인적 성격파탄에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돼 온 제도적·조직적 부조리의 한 표출이라는 것이 신민당의원들의 지적이다.
신민당의원들이 이 사건에 더욱 열을 올리는 것은 지난달 19일 명동집회에서의 최루탄직사와 27일 성공회주최 기도회에 참석하려던 의원부인들이 졸도하거나 귀밑이 찢어지는 등 경찰의 과잉제지가 있었기 때문.
그러나 부천 사건은 사안의 성격상 공개회의에서 자세히 내용을 추궁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난점이 없지 않다고 실토하는 의원들도 있다.
신민당의원들은 양순직 부총재 등 이 최루탄을 맞아 찢어지거나 최루탄가루가 흠뻑 묻은 옷을 증거물로 동원, 경찰의 과잉제지를 집중 추궁할 계획.
신민당은 이밖에 선언교수들에 대한 불이익처분, 문제학생명단의 학부모직장통보 등도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의 철저한 추궁을 다짐하면서도 신민당은 이로 인해 헌 특에 암운을 몰고 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어 이번 상임위가 어떤 궤도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희창·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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