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속마음|박보균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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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카소네 일본 수상의 지난 22일 내각개편 내용을 분석하던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의외의 인선에 긴장했다고 한다. 「후지오」자민당 정조회장의 문부상 입각 대목에서다. 한국, 중공 등에서 교과서 왜곡문제가 한창 시끄러운 때 「후지오」의 문부상 기용은 시기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고 이 관계자가 아는 그의 퍼스널리티로서는 이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주변국의 합리적인 요구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민당 최후의 대만 로비이스트. 전전의 교육방어정신의 부활을 주도하는 보수회귀제창자. 그가 속한 「아베」파가 주류를 이루는 한일 의원연맹에의 가입을 거부하는 독특한 정치인. 독설과 안하무인 적인 태도.
「나카소네」수상이 새로운 교과서 파동이 확산되고 있는 시기에 왜 이런 인물을 교과서담당·대신으로 기용했을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정치스타일과 성향을 추적하던 이 관계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어떤 형태로든 주변국과 심각한 마찰을 불러일으킬 파문이 그로 인해 생길 것이다. 역사교과서 왜곡 마찰에 관한 한 그는 「시한폭탄」이다』고 메모를 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후지오」문부상의 이번 망언은 하나의 예고된 파문이었다. 더구나 일본총선에서 나타난 보수주의·신국가주의의 물결에서 보면 결코 놀랄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주변국가를 비하하는 표현을 동원한 그의 발언은 주변국가들로서는 심히 못마땅하지만 일본인의 속마음을 대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 수정요구에 대해 일본인들은 이제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4년 전의 교과서 파동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일본의 우익보수진영을 대변한다는 산케이신문은 『내정간섭에 굴복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나섰고 「고토다」관방장관은 『더 이상의 교과서 수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회귀의 강력한 힘을 배경으로한 자신감의 표현들이다.
「후지오」의 망언은 53년의 「구보다」, 65년의「다카스기」, 74년의「다나카」, 82년의 「마쓰노」 망언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지만 아시아 중심주의·정치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시점에서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망언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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