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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곁가지 대책으로 가계부채 잡을 시기 지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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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동산발 가계부채 경고음이 사방에서 울린다. 지난달 가계대출이 8조7000억원 늘어, 8월 증가폭으로는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국은행이 어제 밝혔다. 부동산 비수기인데도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데다 마이너스 통장과 같은 신용대출마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전국 평균 집값은 사상 처음 3억원을 넘어서고 서울은 5억원을 돌파했다. 서울 강남권은 6억원을 넘겨 집값 거품이 한창이던 2000년대 중반 수준을 추월했다. 지난달 25일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은 부동산 시장을 오히려 달구고 있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2%를 넘겨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견본주택에 몰리는 인파가 줄어들거나 새 아파트 청약률이 수그러들 조짐도 없다. 가파르게 오르는 호가에 집주인조차 “무섭다”고 할 정도다.

8월 증가폭 또다시 사상 최고
분양권 전매제한·DTI 강화 등
부동산 과열 막을 대책 내놔야

 가계부채는 이미 양과 질 모두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 630조원에서 지난 6월 말 1257조원으로 꼭 두 배가 됐다. 이명박 정부 5년간 276조원, 박근혜 정부 3년 반 동안 351조원 증가하는 등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 경제가 2% 중반 성장하는 데 그치고, 2분기 가계소득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도 가계부채 증가율은 두 자릿수를 기록할 기세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16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계부채로 집값을 올리는 정책의 효과가 한계에 달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집값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보다 부채 증가에 따른 소비 위축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비율이 1%포인트 높아지면 소비가 0.06%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경제지표와 체감경기가 따로 노는 것도 부동산 영향이 크다. 지난 1년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의 절반이 건설 투자 증가에 따른 것이었다. 부동산을 빼면 실제론 1%대 성장이란 얘기다.

 금리를 무작정 더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방식의 성장을 지속할 순 없다. 구조개혁은커녕 경제의 체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성장률 같은 수치의 유혹을 떨쳐내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를 직시할 때가 됐다. IMF도 “한국의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가 주변국에 비해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현재 60%인 DTI 비율을 점진적으로 30~50% 수준까지 내리고 아파트 집단대출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소한의 대출 건전성을 확보해 부동산이 경착륙할 위험을 사전에 줄이라는 얘기다. 분양권 전매 제한과 청약 자격 강화, 집단대출에 대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과 같은 방안도 미룰 이유가 없다. 이런 조치로 시장이 급랭할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는 자기 모순이다. 투기적 수요를 억제한다고 얼어붙는다면 이미 정상적 시장이 아니다. 가계부채 대책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만 다섯 차례 발표됐다. 하지만 정공법이 아닌 곁가지 대책으로 일관했다. 이런 식으로 가계부채를 다룰 수 있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