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차가 막히는 걸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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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사고가 났는 줄 알았는데 아니고,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램프에서 끼어들기 차량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운전을 하다 보면 때때로 ‘유령 정체’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 이유 없이 차가 거북이 걸음을 하다가 완전히 꽉 틀어막힌 것처럼 행렬이 멈추기도 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참 있다 보면 역시나 아무 이유없이 도로가 뻥 뚫리기도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왜 그러는 걸까. 미국 미디어 복스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 문제에 답을 제시했다.

세계 몇 무리의 과학자들은 몇 년 전부터 이 현상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실제 도로에서의 실험도 했고, 시뮬레이션 모델도 만드는 수년 간의 연구 끝에 답을 찾았다. 이런 정체를 막는 운전법도 제안했다.

정체의 이유부터 풀어보자. 고속도로 위를 차가 달리고 있다. 한산한 것도 아니고 가득 메운 것도 아니다. 편안하게 달리기엔 무리가 없지만 과속하기엔 난감한 정도의 차량이 고속도로 위에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차들은 아주 작은 방해요소만으로도 정체를 불러일으키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한 차량이 브레이크를 살짝 밟으면 뒤따르던 차량은 추돌을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더 밟게 된다. 그 뒤의 차는 앞차보다 더 세게 밟게 될 것이고, 이는 조금씩 증폭돼 차량의 원활한 흐름이 끊기게 된다. 즉 차량의 행렬이 멈춰서거나 매우 느려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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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질한 교통 흐름에 작은 변화가 생기는 것을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파장이 생기는 것으로 보면 된다. 예를 들면 울퉁불퉁한 부분을 만나 속도를 줄인다거나 딴 짓하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것 따위다.” 미국 템플대 수학과 벤자민 세이볼드 교수의 말이다.

보통 속도가 줄었다가 다시 원래 속도를 회복할 때까지의 거리는 100m~1㎞ 정도다. 처음엔 차들이 다닥다닥 붙기 시작하다 급격히 속도가 떨어지고 다시금 천천히 가속해 속도를 회복한다.

일본의 연구진은 이런 실험을 실제로 해봤다. 원으로 만들어진 도로를 만들어 놓고 22명의 운전자를 시속 30㎞의 똑같은 속도로 달리게 했다. 차 사이의 간격도 똑같이 맞췄다. 운전자들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정체가 생기는 걸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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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누가 잘못해서 이런 정체가 생기는 걸까. 운전 실력도 없으면서 차를 괜히 갖고 나와서 브레이크나 자주 밟아대는 부주의한 운전자의 책임일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잘못 짚었다. 정체를 유발하는 사람들은 운전이 서툰 사람이 아니라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다.

“최대한 빨리 갈테야.”

이런 차들은 앞차와 부딪히는 걸 피하려고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밟기 십상이다. 이런 행위가 ‘정체의 유령’을 잠에서 깨운다.

세이볼드 교수는 “앞에 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보이더라도 그런 차들은 브레이크를 밟는 시점까지 계속 달리려 한다. 하지만 대신에 일찌감치 속도를 줄여서 앞차와의 충분한 간격을 유지한다면 정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MIT 컴퓨터 공학자 버솔드 혼은 “앞차와의 거리와 뒷차와의 거리가 거의 동일하도록 달린다면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대비하는 행동을 취해도 유령 정체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단지 가능성만 높일 뿐. 도로 위에 차가 충분히 있다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유령 정체는 시작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특정 운전자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험을 할수록 깨닫게 됐다. 모든 운전자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운전을 한다고 해도, 단 한 명도 그 방식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도, 유령 정체는 나타났다.” 세이볼드의 말이다. 결국 인간이니까 똑같이 운전을 하려고 해도 그게 실제로는 안 되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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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마디로 도로 위에 충분한 차들이 달리고 있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유령 정체는 저절로 나타난다. 아마 모든 차들이 자율주행 차량이 아닌 이상 피할 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운전자들이 아니라 도로 설계자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도로가 더 곧거나 표면이 매끈할수록 정체가 덜 일어났다. 운전자들이 브레이크를 밟을 일이 덜 해서다. 이미 고속도로는 만들어져 있으니 곧게 바꾸는 게 무리라고 하더라도, 표면을 잘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보다 좀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다. 제한 속도를 가변적으로 두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날씨에 따라 그러고 있기는 하지만, 도로 위 교통량에 따라서도 제한 속도를 달리한다면 정체를 줄일 수 있다. 도로 표지판을 전광판 방식으로 만들어서 교통량에 따라 제한속도를 바꾼다면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일을 줄일 수 있고, 결국 정체를 막을 수 있다.

도로의 제한 속도를 낮추는 것이 전체 교통 흐름을 더 좋게 해, 결과적으로는 모든 차량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결국 정체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율주행 차량이다. 자율주행 차량은 교통 흐름 전체를 파악해 적절하고 정확하게 속도를 컨트롤하기 때문이다. 인간 운전자보다는 훨씬 효율적으로 차량의 가속과 감속을 판단하고 대처한다.

예를 들면 몇 ㎞ 전방에 사고가 났을 경우 자율주행 차량은 이 정보를 신속하게 받아들여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정체 시작 지점까지 가야지 뭔가 일어났다는 걸 깨닫게 되는 사람에 비해 훨씬 대처를 수월하게 한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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