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실패, 「처용」은 공연 백지화|대형오페라 졸속으로 예술성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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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들어 음악계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대형 창작오페라의 제작이 주무부서의 안일행정 및 졸속에 쫓겨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같은 예는 오는 11월6일부터 공연예정으로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제작중이던 국립오페라단의 『처용』(김의경대본·이영조작곡)이 일단백지화된 사실, 또 초대형 창작 오페라로 무대에 올랐다가 (6월21∼23일·세종문화회관대강당) 범작으로 끝나 음악팬들을 실망시킨 시립오페라단의 『춘향전』(박준상대본·작곡) 공연을 들 수 있다. 『처용』은 문예진흥원이 문화예술창작 활성화를 위한 작가생활자금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대본·작곡자에게 작년6월부터 각각 1년간의 생활비를 포함, 약 1천만원을 지급하는 대신 1년만에 창작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조건하에 국립극장측의 위촉으로 김의경(대본·현대극장대표) 이영조(작곡·연대교수)씨가 창작에 임한 것.
그러나 대본구성자인 김씨로부터 지난 5월 대본을 인수받아 「석달완성의 밤새기작곡」에 들어갔던 이영조씨에게 최근 국립극장측은 「작곡을 중지하라」고 통고했다.
이유는 두달전 심사도 없이 작곡자에 넘겼던 대본을 뒤늦게 심사해 보니 『도저히 무대에 올릴 수 없는 작품으로 판정됐기 매문』이라는 것. 결국 『처용』의 올가을 공연은 현단계로 수포로 돌아갔다.
이같은 차질은 ▲대형창작오페라의 대본·작곡의 1년 완성이라는 문예진흥원 및 국립극장측의 무리한 요구 및 발상이 근본 원인이며 또 ▲주무부서등과 대본작가와의 손발이 맞지 않아 업무진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이 주요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거기다 ▲대본의 제때 감수없이 작품을 작곡자에 넘기는 안일함과 작곡을 두세달만에 해치울수 있다는 졸속행정의 관행도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달 있었던 시립오페라단의 『춘향전』공연도 이와 유사한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킨 케이스.
대본에서 공연까지 6개월 완성으로 시작됐던『춘향전』은 대본을 맡았던 이어령교수(이대) 가 손을 뗌으로써 오페라 대본구성에 전혀 경험이 없는 작곡자 박준상씨 (중대교수) 가 한달만에 대본을, 두달만에 작곡을 끝내야 했다. 이 때문에 『막이 오르기 20일전까지도 출연진들은 제대로 된 악보를 받아볼 수 없어 창작 오페라의 전체적 윤곽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춘향역을 맡았던 이규도교수(이대)는 말한다.
결국 대본과 악보를 보고 연출을 구상해야 했던 연출자 문호근씨(서울대출강)가 연출을 포기했고 백의현씨(이대교수)가 문씨가 구상한 세트에 허둥지둥 연출을 이어 받아야 했다.
이같은 창작오페라의 졸속제작 및 공연실패에 대해 이영조교수·김태현교수(상명여대) 및 음악평론가 박용구씨등은 『외국의 경우 대형오페라 제작에 보통 4∼5년의 준비기간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서 『국립 및 시립오페라단이 기타 사설 오페라단에 비해 월등히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같은 차질을 빚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혜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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