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지켜라…변호사 66명에 떨어진 특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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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해 3월 송무국을 신설하고 전문 인력을 잇달아 영입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한 최진수 송무국장을 비롯해 이경진 송무2과장, 김신희 송무3과장 등이 모두 판사·변호사 출신이다. 변호사 출신 직원을 서울지방국세청에 20명이나 포진시켰다. 국세청 전체로도 법조인 출신을 늘렸다. 2014년 29명이던 변호사 직원이 현재 66명으로 늘었다. 과세를 둘러싼 소송 전쟁에 본격 대비하기 위해서다.

서울지방국세청 작년 송무국 신설
대형 로펌 앞세운 조세 소송 대비
전담팀이 맡은 후 패소율 낮아져
2년 내 변호사 100명까지 늘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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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환수(사진) 국세청장은 지난해 송무국 발대식에서 “조세소송은 제2의 세무조사다”라는 화두를 던졌다. 임 청장은 “조세소송의 쟁점은 더욱 복잡화, 전문화하지만 세법이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국세청의 이런 움직임은 대형로펌을 등에 업은 대기업·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과세 불복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과세가 부당하다며 납세자가 제기한 행정소송 건수는 2012년 1679건에서 지난해에는 2026건으로 2000건을 넘어섰다. 소송이 늘며 국세청이 소송에서 패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지난해 국민은행과 벌였던 4000억원대 법인세 소송이 대표적이다. 국세청은 국민은행이 국민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줄였다며 4420억원의 법인세를 부과했다. 이에 국민은행이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1월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국정감사에서도 국세청의 소송 역량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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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적에 따라 국세청은 소송 관련 업무체계를 바꿨다. 과거에는 실무자 1인이 소송을 전담했다. 역부족일 때가 많았다. 지난해부터 3인 1팀제로 소송을 수행하고 중요 사건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응했다.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2심에서 패소했던 사건을 대법원에서 국세청 승소로 돌려놓은 일이 속속 나왔다. 카지노 고객 모집업을 하는 필리핀 소재 거대 외국법인의 자회사에 법인세를 매긴 데 대한 소송이 한 예다. 국세청은 이 회사에 법인세를 과세했지만 회사가 불복해 소송을 냈다. 국세청은 1,2심에서 패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이 건에 대해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고 파기환송 판결했다. 이를 통해 되돌려줄 뻔했던 세금 141억원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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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국세청에 따르면 2013년 13.5%까지 올랐던 국세청의 소송 패소율(건수 기준)은 올 상반기 11.2%까지 떨어졌다. 소송 금액 기준 패소율도 2013년 36.2%에서 올 1~6월은 13.7%까지 개선됐다.

국세청은 변호사 채용을 2018년까지 100명으로 늘리는 등 송무조직 강화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잘못된 과세가 되지 않도록 담당 직원뿐 아니라 관리자의 책임도 엄중하게 묻는 방식으로 ‘과세품질 강화’에도 적극 나선다. 향후 세금을 둘러싼 국세청과 대기업·다국적기업 간의 ‘논리 대결’이 더욱 치열해 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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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투’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본, 홍콩 등에서 해운회사를 경영하던 A씨는 세법상 비거주자라며 소득세를 신고하지 않다가 국세청으로부터 200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는데 A씨가 이에 불복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가산세를 포함하면 A씨가 체납한 세금이 4000억원대에 이른다. 최진수 송무국장은 “새로운 거래 유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대기업은 거래 시작부터 로펌의 조력을 받아 과세에 대비하고 있다”며 “어려운 환경이지만 소송 대응력을 키우고 근본적으로 국세청 전체 직원들의 ‘법적 마인드’를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설명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무 관련법이 경제 상황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이는 소송 과정에서 국세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송무 조직 강화와 함께 보다 치밀한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국세청이 소송 역량을 키우는 과정에서 일반 국민의 권리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운찬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조세소송이 벌어지기 이전에 국민의 권리를 최대한 지켜줘야 한다”며 “소송 이전의 절차인 이의신청, 심사청구 과정에서 납세자의 의견 진술 기회를 최대한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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