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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국 최고 성능 수퍼컴, 중국의 2.6% 수준이라는 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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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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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산업부 기자

대전 유성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1층에는 ‘수퍼컴퓨터 4호기’가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범용 수퍼컴퓨터로,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소는 물론 기업들도 각종 연구개발(R&D)에 사용하고 있다. 2009년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올 때만 해도 세계 14위의 성능을 자랑하던 ‘막강’ 수퍼컴퓨터였다. 연산 속도가 300테라플롭스(TFlops·테라는 10의 12승)에 달한다. 쉽게 말해 1초에 300조번의 연산을 할 수 있는 속도를 뜻한다.

2009년 도입 ‘수명주기 5년’ 지나
중국, 10년 전 부터 4000억씩 투자

하지만 그 수퍼컴퓨터 4호기도 이제는 세월이 지나 세계 500위권 밖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그래도 아직 KISTI의 수퍼컴퓨터 4호기는 할 일이 산더미다. 국내 중소기업이 이 4호기를 한 번 사용하려면 3.5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할 정도다. 사실 4호기는 은퇴 시기가 진작에 지났다. 학계에서는 수퍼컴퓨터의 수명 주기를 5년으로 보고 있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컴퓨터의 성능은 5년마다 10배, 10년마다 100배씩 향상된다. 현재 세계 수퍼컴퓨터의 속도는 테라의 1000배에 달하는 페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때문에 KISTI는 내년을 목표로 25페타플롭스급(PFlops)의 수퍼컴퓨터 5호기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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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수퍼컴퓨터의 존재가 필수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빅데이터와 컴퓨팅 파워 덕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세계 500위권에 올라온 수퍼컴퓨터가 7개에 달한다. 수퍼컴퓨터 보유 순으로 보면 세계 8위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7대 모두 수입산이다. 그나마 국내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기상청의 수입 수퍼컴퓨터의 능력도 중국이 자체 개발한 수퍼컴퓨터 ‘선웨이 타이후라이트’의 2.6%에 불과하다. 정보 기술(IT) 강국이라던 한국이 어쩌다 이 정도로 ‘수퍼컴 후진국’이 됐을까.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가 한국 사회를 뒤흔든 직후인 지난 4월 미래창조과학부는 매년 100억 투자해 2020년까지 1페타플롭스, 2025년까지 30페타플롭스를 넘어서는 수퍼컴퓨터를 독자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터무니없이 낮은 목표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태 의원은 7일 “한국은 수퍼컴 선순환 생태계가 망가진 지 오래다. 한국의 수퍼컴은 현재 동맥경화증을 앓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미래부가 세운 2020년 목표라는 게 고작 2008년 세계 1위 수준이고, 최종 목표인 2025년도 수퍼컴의 성능도 지금의 세계 2위 성능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쫓아가는 셈이다.

10년 전 수퍼컴퓨터 10대를 가지고 있던 중국은 그간 매년 4000억원씩을 투자해 개발에 나섰다, 올해는 드디어 수퍼컴 최강국 미국을 넘어서 세계 1위에 올랐다. 김 의원은 “수퍼컴 활용에 대한 국가적 인식 전환은 물론, 과감한 예산과 인력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준호 산업부 기자 choi.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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