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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핵심 증인 홍기택 불참…‘맹탕’ 돼버린 서별관 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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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경제부총리(오른쪽)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오종택 기자]

8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일명 서별관 청문회)는 시작부터 의사진행발언으로 30분을 허비했다.

초반 30분 의사진행발언으로 허비
야당 “최소한의 자료도 안 줘 부실”

2015년 10월 22일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의 4조2000억원 지원 결정이 내려진 과정을 밝혀줄 핵심 증인인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소재 파악조차 안 된 상태였다. 야당 의원들이 이를 탓하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실제로 첫날 청문회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소속의 여야 의원 30명이 나섰지만 말잔치뿐인 ‘맹탕 청문회’, 언론보도 내용을 반복하는 ‘재탕 청문회’였다. 의원들 스스로도 청문회 앞에 다양한 수사를 붙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맹탕 청문회’는 그렇다 쳐도 자료를 주지 않아 ‘허탕 청문회’까지 된 건 어떡하느냐”고 푸념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우리 경제의 향배를 가늠하는 청문회가 중요 핵심인사가 빠진 ‘깃털 청문회’, 최소한의 자료도 빠진 ‘먹통 청문회’로 진행돼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더민주 박광온 의원은 “조선·해운업이 침몰 직전에 내몰리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에 관여했던 분들이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사실상 조선·해운업을 살릴 방도를 찾을 기회를 무산시키는 청문회”라고 주장했다.

오후 2시 속개 후에도 증인 출석과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30분가량 시간이 흘러갔다. 더민주 정재호 의원은 “부실을 따지자는 청문회 자체가 부실”이라며 “핵심 증인이 없고 자료가 부실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자료·증인 부족에 고심하던 더민주는 급기야 19대 국회 하반기 정무위 야당 간사였던 김기식 전 의원까지 참고인으로 신청했다. 김 전 의원의 입을 빌려 청와대 서별관회의의 문제점을 부각하려는 우회전략이었다.

김 전 의원은 “2014년 하반기 홍 전 산은 회장을 따로 만나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위험이 있으니 확인해 보라고 했지만 별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5년 상반기에 다시 만나 분식회계가 아닐 리 없다고 했지만 두 번째도 같은 대답을 했는데, 몇 달 후 대우조선은 반기보고서에 3조원의 손실을 반영했다”고 증언했다.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 지원을 결정한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불합리한 결정을 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분식 위험성이 있다는 정도로만 인식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은 수비에 바빴다. “(청문회가) 너무 인물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면 우리가 앞서 아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에 상당히 제한이 있다”(유의동 의원)는 식이었다. 추경호 의원은 “나름대로 정부가 문제를 포착하면서 최선을 다한 측면도 꽤 있다”며 “정부에 계신 분들이 소신 있게 하시라”고 격려까지 했다. 기자와 만난 한 청문위원은 “우리의 전략은 철벽 수비”라고 말했다.

백척간두의 조선·해운업계의 구조조정 문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서별관 청문회다. 증인 47명, 참고인 8명을 채택했고, 이날만 30명이 넘는 증인·참고인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청문회라면 30명의 여야 의원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고민도, 열정도, 교훈도 없는 청문회였다.

글=박유미·안효성 기자 yumip@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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