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의 바람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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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들끓는 땡볕 아래 한기마저 스치더냐
할퀴고 찢겨져 간 그 살점 뼈마딘 흙이 된 채
바람꽃 핥는 잡초밭에 호곡하는 푯말빛...
감초록 풀물 드는 골깊은 능선을 질러
살얼음 빙판을 젖는 섬뜩한 살깽이 울음
차라리 짐승들이야 자유로이 넘나든 땅-
철조망 지뢰밭 사이 눈 먼 역정을 뇌이며
끊겨진 경평길도 달리고픈 철마인걸!
그렇게 발묶인 이승하늘 저승보다 멀더이까,
피보라 물든 녘에 무시로 핀 들꽃하며
비정한 유한 속에 떨고 있는 산울림에
어머니! 부른 그 외마디, 목이 타는 강 노을빛
하마, 어찌 잊히랴 그날의 신음과 함성,
천둥번개 휘몰아친 아우성 귓전을 타고
밤마다 물드는 악의 꽃, 꿈자리를 떨치랴,
허리 잘린 칼바람에 뿌리 박힌 종기ㄹ뽑듯
파아란 기적의 꿈, 어느날쯤 돋아나와
한하늘 빛살을 치는 가얏고를 뜯어보랴.
주※살깽이 울음=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소리를 비유함
※바람꽃=큰바람이 일어날때 먼산에 구름같이 끼는 보얀 기운, 또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국화바람꽃, 그늘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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