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마감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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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친구여, 눈물과 통곡보다는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이제 너를 보낸다…』
30일 하오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
지난 20일과 28일 분신자살한 이동수·이재호군의 장례식이 1천여명의 동료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2개의 관이 대형 초상화와 태극기로 감싸였다. 만장이 늘어선 제단에는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두운 죽음의 시대/내 친구는/굵은 눈물 흘리며/역사가 부른다/멀고 험한 길을/북소리 울리며/멀어져간다….』
「친구Ⅱ」의 가락이 트럼핏 연주로 광장 가득 울려퍼졌다.
5월의 신록이 너무 눈부셔 더욱 가라앉은 캠퍼스의 침울.
장례식을 마친 학생들은 학생회관 3층 총학생회의실로 가 「민주구국열사위령관」의 개관식을 가진 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전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위령관은 학생들이 모금한 몇만원의 성금으로 마련됐다. 위패에는 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씨를 비롯, 그동안 자의와 타의에 의해 숨져간 근로자와 학생 26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시간 인문대 앞에서는 지난 22일 「회색인」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한 박혜정양의 장례식이 따로 조촐히 거행됐다.
하오 3시20분쯤 다시 광장에 모인 학생들은 5월을 정리하려는 듯 민족민주열사탄압규탄·이원집정제저지 집회를 잇달아 열고 교문으로 나가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자욱한 최루탄 안개속 5월이 막을 내리는 하오. 분신과 투신의 「잔인한 5월」을 영영 장송하고 눈부신 신록으로만 5월을 맞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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