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장동력 안 보이고 장밋빛만 보이는 400조 수퍼예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사상 처음 400조원을 돌파한 2017년 수퍼예산안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확정됐다. 우려대로 정부는 내년 선거를 의식해 온갖 선심성 사업이 포함된 예산안을 손질 없이 통과시켰다. 기획재정부는 세계적인 기관의 경제전망을 참고해 내년 경상성장률을 4.1%로 보고 예산안을 짰다고 밝혔지만 장밋빛 전망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가 내년에는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당초 올해 대비 2.7~3% 범위에서 예산을 늘리려고 했지만 당정협의를 거치면서 내년 예산안이 낙관적 전망에 따라 한껏 늘어났다. 올 상반기 깜짝 증가세를 보인 세수가 내년에도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되면서다.

정부는 이런 장밋빛 전망 아래 내년 총수입이 올해 본예산보다 6% 늘어날 것으로 보고 총지출 증가율을 3.7%로 잡았으니 통제 가능한 범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세수의 반짝 증가세는 이미 올 하반기 들어 주춤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성장이 계속되고 세수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내년 예산안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예산 편성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 것도 우려를 자아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경기를 고려해 재정은 기본적으로 확장적으로 편성했다”고 밝혔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방만한 예산 사업이 수두룩하다. 이는 ‘예산은 먼저 당겨와 쓰면 임자’라는 식의 정부 관행이 만연한 탓이 크다. 올해도 50여 주요 정부부처 공무원은 세종시에 있는 기재부를 대상으로 예산 따내기 로비와 설득에 열을 올렸다. 기재부가 이색 사업이라고 홍보하는 자료에 따르면 당장 긴요해 보이지 않는 사업이 수두룩하게 포함된 이유다.

성장동력을 강화하고 경제활력을 높일 만한 분야의 투자가 줄어든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성장률을 회복시켜야 일자리도 가계소득도 늘어나기 마련인데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을 올해보다 오히려 줄였다. 반면 보건·노동을 포함한 복지예산은 130조원으로 크게 늘려 전체 나라 살림의 32%를 넘어섰다. 성장동력에 직접 투입되는 예산은 크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성장동력도 키우지 못하는 ‘불임 예산’을 편성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 40%를 돌파한다. 여기에 공무원·군인에게 지급할 연금 부채까지 포함하면 국가부채는 천문학적 규모로 부푼다. 국회가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방만한 예산을 그대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예산 곳곳에 끼어 있는 거품을 빼고 표를 겨냥한 선심성 수당 확충과 사업을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입에 펑크가 나면서 박근혜 정부 들어 되풀이되고 있는 추가경정예산을 내년에도 편성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재정구조를 왜곡해 일본처럼 만성적인 재정적자 국가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다. 취업이 어려운 청년세대에게 부채폭탄까지 지워선 안 된다. 국회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