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지원 "많이 차렸지만 먹을 게 없다"|육성 실태와 업계·금융계의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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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어느때보다도 중소기업지원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3저 호기를 이용, 중소기업기반을 강화해서 대외경쟁력을 확보해보자는 데 취지가 있다. 연초부터 정부부처들은 앞을 다퉈 가며 각종 지원·육성대책을 연속적으로 발표해왔다.
재무부는 중소기업애로타개위원회 설치를 비롯해 은행의 대 중소기업 대출의무비율을 높이고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확대를 은행에 강력 지시하는가 하면, 또 상공부는 국회에서 통과된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방침이다.
이법에 따라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투자의 길이 열렸고 원스톱 서비스의 민원창구가 각 시·군에 개설됐다. 그러나 이같은 의욕과 열의에 비해 현실이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는게 문제다.
시간이 걸려야 해결될 일도 없지 않지만 애당초 무리한 정책을 양산해낸 면도 없지 않다. 업계와 금융계의 반응과 실정을 정리해본다.

<업계>
『차려놓은 반찬은 많은데 별로 먹을 게 없다』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중론이다. 올들어 정부는 중소기업육성을 위한 각종 시책을 화려하게 발표했지만 막상 뭘 해보려고 찾아가면 일선 관공서 창구나 은행문턱에서부터 턱턱 막히고 만다는 얘기다.
정부발표만 믿고 일을 추진하다 보면 『그런 지침이 내려온 적이 없다』며 되돌아 앉는일선공무원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책임지느냐』며 책임회피에 급급해하는 대출담당자에 막혀 중도포기하게 된다.
경남충무에서 요트를 생산하는 K씨의 경우 감정가 5억원의 담보와 7억원에 달하는 수주확인서를 들고도 3억원밖에 대출을 못받았다.
정부발표대로라면 최소한 담보감정가인 5억원까지는 대출을 해줘야 하는데도 은행측은 실적이 없다면서 3억원 이상은 완강히 거절하더라는 것. 『수주액이 7억원이고 사업성이 충분한데도 책임회피 때문에 안해줍니다. 말이 중소기업 육성이지 이래서야 어디 정부믿고 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K씨의 이유있는 항변이다.
그는 모은행본점을 두 번, 중소기협중앙회를 네 번, 해당지점을 세번, 재무부등을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허사로 끝났다.
취지는 좋지만 현실성이 없어 아무 효과도 못내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산성향상시설투자세액공제」 제도.
중소기업자가 내용연수가 경과된 기계설비를 개체할 경우 국산기계는 투자액의 10%, 외제는 6%를 세금에서 직접 빼주는 제도로 따지고보면 기업으로서는 상당한 혜택인 셈이다.그러나 내용연수 결과여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계취득일자를 알아야 하는데 무슨 수로 10년도 넘은 기계의 구입일자를 증명하느냐는 것.
중소기업의 60%가 무기장 사업자이고 담당직원이 자주 바뀌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거의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모업체의 경우 전직원이 나서서 하루 온종일 창고를 뒤졌지만 허탕을 치고, 혜택을 포기했다. 이 제도가 실시된 이래 14만2천여 중소기업중 수혜업체는 13개뿐이라는 것이 기협중앙회의 설명이다.
세제면에서도 20여가지에 달하는 각종 지원세제가 마련됐지만 절차가 복잡하여 차라리 세금을 좀 더 내고마는 것이 속편하다는 얘기까지 들리는 실정이다.

<금융계>
올들어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예년에 비해 나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의 중소기업대출은 거의 막히다시피한 상황이어서 요란한 선전에 비하면 실제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몫은 아직도 미흡하다.
정부가 적극 추진하겠다던 10억원 이하의 자동신용대출제도만해도 말뿐이지 실제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재무부의 지시에 따라 검토는 하고 있으나 은행과 신용보증기금 모두 대손부담문제를 놓고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쳐 있는 상태다. 은행관계자들은 『아무리중소기업육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같은 변법지원은 금융질서를 근본적으로 흩뜨리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중소기업창업에 대한 금융지원이나 세금감면 혜택등은 시행령이 마련 안돼 가을께 가야본격적으로 실시될 전망이다.
최근 금융당국의 강력한 통화긴축으로 시중은행의 일반대출이 거의 중단되고 있는 점도 중소기업들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초에 신설된 각 은행의 중소기업부는 개점휴업 상태다.
이밖에 계열화 추진대상으로 수급협의회가 구성된 기업에 대해서는 모기업이 보증을 설 때 계열기업에 대해 신용대출을 해주기로 한 방침도 아직 이용된 사례가 전혀 없다.
H자동차처럼 수출이 잘되고 자체금융 여력이 있는 곳은 스스로 지원이 가능하다는 얘기고, K산업처럼 이 제도의 필요성을 느끼는 기업도 아직은 자체 생산규모와 이에따른 계열
하청ㅇ기업의 시설증설 규모등이 확정되지 않아 실제 지원이 이뤄지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증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각종 제도가 갖춰지고 통화팽창 압박이 줄어들 것으로보이는 올 하반기 이후부터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얘기다.
그러나 적어도 대출에 따른 심사절차나 각종 서류의 간소화, 신용대출 범위의 확대, 나아가 자의건 타의건 중소기업을 대하는 은행의 자세는 상당히 개선됐다는 중론이다.

<민원창구>
중소기업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시·군·구별로 2백37개의 창업민원실이 설치돼 있지만 간판만 있지 담당직원 한명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특히 농업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군단위에서 다른 일도 바쁜데 가뭄에 콩나듯 있는 창업상담을 위해 전담직원을 따로 둘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
설사 전담직원이 있다해도 창업절차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창업지원을 위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관련법령 정비도 이루어지지 않은 마당에 복잡하고 까다로운 창업을 지원할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박태욱·배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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