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택지공급 축소” 내놓자 더 붐비는 청약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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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25일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분양시장은 더 북적거리고 있다. 사진은 26일 문을 연 서울 성북구 장위동 래미안 장위1 견본주택. [사진 삼성물산]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래미안 장위1’ 아파트 견본주택은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다. 수요자에게 인기가 높은 전용 84㎡형 유닛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에만 1만 명 넘게 왔고 26일 견본주택 문을 연 이후 3일간 2만5000여 명이 다녀갔다.

집값 상승 우려에 수요자들 몰려
업체, 연말까지 21만 가구 쏟아내
“중도금 대출 규제 효과 크지 않아”
정부 “과열 계속되면 대응책 검토”
전문가 “분양권 전매도 제한해야”

직장인 한영훈(38·서울 미아동)씨는 “앞으로 신규 택지공급이 줄어들면 수도권 집값이 오를 것이란 생각이 들어 왔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시공사인 삼성물산 한상윤 분양소장은 “정부의 중도금 대출 규제 등으로 분양 열기가 가라앉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분양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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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주택 공급을 줄이기로 했지만 아파트 분양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분양시장에 수요자가 몰리고 주택건설업체는 분양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29일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연말까지 전국에서 21만3000여 가구가 분양예정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절반이 넘는 12만1000여 가구가 수도권에서 계획돼 있다. 이는 분양이 급증했던 지난해보다 많다. 지난해 같은 기간 분양된 물량은 전국 19만 가구, 수도권 10만 가구였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지난달부터 중도금 대출 보증을 2건으로 줄였는데도 분양물량은 별로 줄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분양승인 물량이 3만6000여 가구로 지난해 7월 3만4000여 가구보다 늘었다. 연말까지 예정대로 분양되면 올해 분양물량(47만5000가구)은 지난해(52만5000가구)보다 10% 적지만 2013~2015년 연평균(39만 가구)보다는 20% 더 많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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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시장이 뜨거운 것은 수도권 등 재건축 시장의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서다. 한국은행이 주택시장 전문가 94명을 상대로 조사해 2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수도권 재건축 주택가격이 하반기에도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분양물량이 줄지 않는 데다 분양 후 3~4개월 뒤 대출이 이뤄지는 특성으로 인해 집단대출은 당분간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앞으로도 가계 대출은 고삐가 잡히지 않고 계속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최근 가계 부채 급증의 주범은 집단대출이다. 올 상반기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23조6000억원 늘었는데 이 중 절반인 11조6000억원이 집단대출 증가분이었다.

분양대행사인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당초 예상보다 대책의 강도가 약해 분양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중도금 대출 규제가 개인별로 적용돼 부부가 모두 대출받으면 4건까지 가능해 청약열기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청약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은 “분양권 전매차익을 노린 ‘분양 쇼핑’ 가수요가 분양시장 과열을 낳기 때문에 분양권 전매 제한이나 재당첨 제한 같은 청약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필요하다면 추가 대책을 검토하기로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개혁추진위원회에서 “이번에 마련한 가계부채 대책을 철저히 집행하고 그 성과를 냉정히 평가·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에서 한도 규제 등 총량 조절책이 빠진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 25일 대책 발표 때 “부동산시장 상황 등을 보고 중도금 등 집단 대출에 대한 단계적인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은 대출 심사 때 상환 능력을 따지도록 하고 있다.

국토부 김경환 차관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하고 “시장을 엄밀하게 관찰해 과열이 지속하면 대응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중도금 대출 보증 강화, 분양권 전매 제한 등을 할 수 있다.

안장원·이태경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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