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속셈 다른"장내활용"|민정-신민 국회 3개 상위 소집 합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야는 19일 하오의 3당 총무회담에서 국회 내무·문공·법사위 소집에 예상보다 쉽게 합의했다. 이로써 여야는 지난4월 초순 임시국회 폐막 이후 40여일 만에 개헌정국의 장내화 진통에 일단 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
이 같은 진전은 인천사태를 다룰 관련상임위 소집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민정당에 의해 이뤄진 감이 짙다.
신민당 측이 지난15일 자체의 인천사태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여야 공동조사를 제의하자 민정당 측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수락했다.
민정당 측은 이날 하오 열렸던 양당 총무회담에서 구속자 문제를 다룰 법사위 소집까지 요구한 신민당 측 제의를 수용해 일단 내무·문공·법사위 소집이 잠정 합의됐다.
이세기 민정당 총무는 19일의 3당 총무회담에서 김동영 신민당 총무가 3개 상위소집의 조건으로 내세운 제의를 대부분 받아 들였다고 한다. 즉 각 상의 소집일정 및 이틀간씩의 회의 기간이나 내무위 조사소위에서의 도경국장 등 관계자의 증언보장 등이 그렇다.
또 소위 구성비율에서도 여야 동수로 하자는 신민당 측 주장에 대해 이민정 당 총무는 국회법의 교섭단체별 의석비를 굳이 고집하지 않고 소위 위원장을 제외한 여야 동수안을 제의하는 융통성을 보였다.
이런 점등은 지금까지의 여당관행에서 보면 거의 없었던 일이다. 특히 소위의 활동과 관련, 국정조사 때나 가능한 도경국장 등 당국자의 증언을 보장해 신민당 측이 더 이상 빠져나가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물론 소위구성의 구체적 문제는 내무위에 일임됐기 때문에 내무위의 소위구성 및 활동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내무위에 위임함으로써 여야는 경우에 따라 공동조사를 유산시킬 수도 있는 제동강치를 갖게 된다고도 보여지기 때문이다.
민정당 측은 지난 임시국회 폐회 직후부터 국회 내 헌법 특별위원회 구성을 위해 임시국회조기소집 또는 운영위 소집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학원사대와 인천사태를 맞아 관련 상위소집을 한층 강력히 주장해왔다.
따라서 이번 3개 상위 소집합의로 민정당 측은 야당 측을 일단 장내로 끌어들였다는데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게다가 어차피 개헌정국과 밀접한 인과관계에서 발생한 인천사태를 집중 거론하는 것이 여 측으로서는 한층 유리한 국면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여 측은 좌경 급진세력의 대두경향이 실로 위험스런 사태발전이며 따라서 야당도 그런 세력과의 연대투쟁에 어떤 선을 그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인천사태의 재조명을 통해 국민과 야당 측에 홍보하고 설득하기 위한 장 마련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 그런 차에 신민당 측의 인천사태 조사결과 발표와 여야공동조사 제의는 민정당 측에「덩굴째 굴러들어 온 호박」격으로 판단됐던 것 같다.
신민당 측은 마산대회를 무사히 마친 것을 계기로 자기들의 심증에 자신을 갖고『인천사태는 정부가 학생 등으로 가장한 2천여 명을 투입, 과격한 시위를 유도했다』고 당국 책임론으로 몰아 붙였다.
민정당 측은 신민당 측의 인천사태 조사결과가 증거의 뒷받침 없는 중구난방 식의 심증 투 성이 인데 자신감을 갖고 공동조사 제의를 즉각 수락하는 등 신민당 측을 역습했다.
민정당 측은『인천사태가 민정당으로서는 오히려 호기인 만큼 이를 승기로 삼아 야당의 황당무계한 허위조작을 밝혀야 한다』는 노태우 대표위원의 말에서 보듯 이를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상위 전략을 짜고 있다.
민정당 측은 내무·문공위에서 △좌경운동권의 용공성 및 폭력성의 규명을 통해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신민당 측 조사발표의 허구성 및 인천사태의 배후를 밝혀 신민당의 보수정당으로서의 위치정립을 유도하고 △이 결과로 신민당 측과 운동권의 연계에 타격을 가해 신민당 측의 장내 진입을 유도한다는 속셈인 것 같다.
따라서 민정당 측은 4·30 청와대 회동으로 개헌에 관한 여야간 대타협의 여건이 마련된 만큼 장외투쟁 및 재야와의 연대투쟁을 중단하고 국회 내 헌특 구성에 응해야할 당위성 부각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 측은 사실 국회가 열리면 △운동권 등 재야와의 어정쩡한 관계의 취약점이 드러나고 △당국의 조작론을 입증하기 어렵고 따라서 좌경·용공성만 부각될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상위소집요구를 회피하는 형국을 보여왔던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신민당이 다소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대여 반격태세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신민당은 우선 객관적 증거확보는 안됐지만 인천사태가 당국의 조직적 사전공작에 따라 국민들에게 혐오감과 위기감을 유발했다는 심증적·상황적 근거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사히 끝난 마산대회와 비교함으로써 최소한 당국이 인천에서는 의도적으로 방임한 부분은 있지 않느냐는 논법으로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당국 발표의 공신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경향을 보면 반드시 신민당 측에 불리한 면만 있는 게 아닐 것이라는 계산도 있는 것 같다.
또 국회에 민통련 등의 관계자를 출석시켜 그들의 주장을 공적입장으로 끌어 올리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민당 측은 특히 인천대회에서 반 신민당 구호의 최초 등장과 경찰의 사전과잉제지를 의혹으로 몰아붙일 것이 틀림없다.
신민당으로서는 내무위 이후에 열리는 문공위도 여권에 의한 좌경성 부각의 위험부담이 있지만 △좌경급진주장의 대두배경이 현 정권의 비민주성에 있다는 인과론 △민주교육선언교사들에 대한 징계문제의 부당성 △KBS방송개선 문제 등을 철저히 파헤치면 무난히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신민당은 이어 열리는 법사위에서 구속자 석방요구와 특히 고문행위 등의 인권침해를 집중 거론, 정부·여당의 아픈 점을 최대한 건드린다는 방침인 것 같다.
여야는 각기 이 같은 전략 하에 상대방의 허점을 최대한 노출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양외 대결을 장내로 수렴하는 중간단계로 활용할 속셈이다.
3개 상위가 종료될 무렵엔 크든 작든 여야간에 이 사회의 좌경급진 세력대두에 대한 인식의 공유기반이 마련될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귀국해 여야 고위회동이 있음직 하며 이어 6월 임시국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헌특 구성협상이 한층 본격화될 여건이 마련될 가능성은 높아지게 될 것이다. 민정당이 이번 상위소집 합의를 야당의 장내진입 신호로 파악하고 기대하는 까닭이다. <이수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