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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올림픽 참가에 의의를 두던 영국이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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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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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이 정도면 오지랖이 넓다고 할밖에. ‘올림픽=애국심’이라지만 남의 나라에서야라고 여겼다. 착각이었다. 어쩌다 보니 밤마다 BBC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원래 좋아하던 스포츠 아니었느냐고? 오히려 생경했다. 평소엔 국제적이던 BBC도 스포츠 중계만큼은 ‘국수적’이었다. TV에 등장한 외국 선수라곤 수영의 마이클 펠프스와 체조의 시몬 바일스, 그리고 육상의 우사인 볼트 정도였다.

 여하튼 자전거 경기는 다 봤다. 벨로드롬에서 하는 스프린트·경륜·옴니엄·단체·단체추발 등이다.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지만 섭렵은 했다. 골프에선 남자 경기를, 탄력 망 위에서 공중제비 하는 체조의 트램펄린이란 종목도 여러 번 시청했다.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는데, 물량이 많아서였다. 하필이면 영국이 100여 년 만에 최고 성적을 냈다지 않나. 48개의 메달을 따는게 목표였다는데 67개나 거머쥐었단다. 그중 27개가 금메달이다. 4년 전 런던 올림픽(65개)을 상회했다. 중국도 제친 세계 2위다. 말 그대로 ‘금빛 커플’도 나왔는데 자전거 선수인 둘이 5개의 금메달을 땄다. 이전까지 합치면 10개다.

 사실 영국인들은 스포츠를 만들어내는 데 능했다. 인기 종목 대부분이 영국에서 시작됐다. 축구·테니스·럭비·크리켓이 대표적이다. 공식 규칙을 만들어낸 것도 여럿이다. 눈 구경하기 어려운 나라인 데도 스키 규칙을 만들었다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잘했느냐고? 참가에 의의를 뒀다. 올림픽 정신이다. 1996년 애틀랜타 여름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이 하나였다. 당시 우린 7개였다.

 20년 만의 ‘상전벽해’에 프랑스·호주 등 경쟁국 못지않게 스스로도 어리둥절한 눈치다. ‘우리가 언제 강국이 됐지’라고 말이다. 이런저런 분석을 하는데 결국 ‘머니 토크(money talk)’로 모였다. 94년부터 복권기금을 엘리트 스포츠에 투입한 덕분이란 거다. 그것도 효율적으로. 이네들 분석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엔 좀 달랐다. 이네들이 잘하는 종목은 평소 즐기는 것들이다. 얼마 전 런던 일대에서 3일간 자전거대회가 열렸는데 아마추어 참가자만 2만6000명이었다. 올림픽 이후 주된 반응도 “나도 해야지”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의 운동장에서 쟁취됐다”는 웰링턴 장군이 했다는 말이 면면히 살아 있는 게다. 전문용어론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조화다. 이젠 리모트 컨트롤 운동 말고도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복부터 사야 하나.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