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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100만 단어창고 ‘우리말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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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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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은 1990대 중반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에 참여했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활(弓) 부위 명칭을 기술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쪽 전문가가 아니라 꽤 난감했다. 이런저런 사전을 참고했지만 책마다 뜻풀이가 조금씩 달라 고생했다. 『17세기 국어사전』을 만들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말(馬) 관련 지식이 달려 말의 부위를 설명하는 데 애먹었다. 국어학자로서 한계를 느꼈다.

최근 화제가 됐던 닭도리탕 논란도 흥미롭다. 한국어 닭에 일본어 도리(새·鳥)가 결합한 단어로 알려졌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순화어로 ‘닭볶음탕’이 제시됐다. 반면에 권대영 한국식품건강소통학회장은 닭도리탕이 순수 우리말이라고 주장했다. ‘도리’가 우리말 ‘도려내다’ ‘도리치다(잘게 자르다)’ 등에서 나왔다고 반박했다. 제법 설득력이 있다. 국어사전 뜻풀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언어는 생명체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새 뜻이 추가된다. 그런데 사전은 보수적이다. 원칙과 규범을 지킨다. 둘 사이의 충돌은 숙명과 같다. 오는 10월 한글날에 맞춰 찾아오는 ‘우리말샘’(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은 그런 창과 방패의 모음집이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처럼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다. 99년 나온 『표준국어대사전』 50만 어휘에 신어·방언·전문용어 50만 단어를 합해 표제어 100만의 방대한 ‘낱말창고’가 탄생한다. 17년 만의 대변화다.

‘우리말샘’에는 일반인도 참여한다. 접수된 의견은 국립국어원 검토를 거쳐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오류도 잡아낼 수 있다. 그 플랫폼을 만드는 데 7년, 210억원이 들었다. 만만찮은 기간, 무시 못할 돈이다. 개통 초기에는 혼란도 예상된다. 새로 올라온 단어를 표준어로 오해하는 일도 빚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 언어생활을 망라한다는 의미는 크다. 어차피 집단지성 시대 아닌가.

일례로 ‘착하다’가 있다. 요즘엔 ‘값이 착하다’ ‘몸매가 착하다’로도 쓰인다. 젊은 주부들 SNS 용어인 ‘셤니(시어머니)’ ‘#G(시아버지)’ ‘얼집(어린이집)’ 같은 언어 파괴가 아닌 한 최대한 반영한다고 한다. 다변화된 시대 ‘편민(便民·백성을 편하게 함)’ 원칙이다. ‘우리말샘’에도 많은 오류가 포함됐을 것이다. 뜨거운 설전이 기다려진다. 잘못된 건 고쳐 나가면 된다. 애들처럼 언어도 다투며 커 가는 걸 테니까…. 세대 불통의 시대, ‘우리말샘’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