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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언론’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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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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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한국 주재 외신기자가 전화를 걸어 왔다. “요즘 한국 언론에서 ‘특정 언론’이라고 말하는 곳이 어디냐, 왜 어딘지를 얘기 안 하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냐”고 물었다. 순간 이런 생각-①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② 아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옳은가 ③ 나는 정말 알고 있나-이 뒤엉켰다.

영어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사의 기사(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된)를 보니 ‘특정 언론’ 표현 방식이 다양하다. 아리랑뉴스는 ‘certain media(특정 매체)’, 코리아중앙데일리는 ‘a newspaper(한 신문)’, 코리아헤럴드는 ‘an unidentified group of reporters(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한 기자 집단)’라고 표기했다. 연합뉴스는 ‘an unspecified reporter(특정되지 않은 한 기자)’라고 썼다. ‘특정된’과 이에 상반되는 ‘특정되지 않은’이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도 이상하지가 않다. 외국 기자들이 헷갈릴 만하다. 일반 신문 독자들 사정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언론은 ‘특정 언론’ ‘한 신문’ ‘한 언론사’ 등으로 표현할 뿐 어딘지를 말하지 않는다(또는 못한다).

발단은 16일 MBC 뉴스였다. 이 감찰관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감찰 내용 누설 의혹을 제기하며 그 대상을 ‘특정 언론사’라고만 보도했다. 그 뒤 소문(사실 여부 미확인 정보)에 의해 한 신문사가 해당 대상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 신문사는 MBC가 주장하는 문제의 정보를 입수한 곳이 자신인지 아닌지 자체를 밝히지 않았다. 3일 뒤 청와대는 이 감찰관을 비판하는 입장을 공개하며 관련 언론사를 ‘특정 신문’ ‘특정 언론’으로만 표현했다.

과연 그 신문사가 MBC의 보도처럼 이 감찰관에게서 감찰 관련 정보를 얻었는지를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이 감찰관과 그와 접촉한(접촉했다는 전제하에) 그 신문사 기자 둘뿐이다. 녹음이 됐다면 이를 들은 사람도 포함된다.

그 신문사에 가타부타를 분명히 밝히라고 다른 언론사가 요구하기는 어렵다. 언론인 윤리강령에 있는 ‘취재원 보호’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하면 대꾸할 말이 별로 없게 된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해도 그뿐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수수께끼가 풀릴 가능성은 있다. 이 감찰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의혹의 한 축에 걸려 있는 ‘특정 언론’의 베일이 벗겨질 수도 있다. 신문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 독자들이 이 난감한 상황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