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수습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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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천시위사태 후 국민의 이목은 여야정치권의 동향과 대용에 집중되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민정당은 노태우 대표·김영삼씨 간의 회담추진 등 어느 때 보다도 활발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신민당은 인천쇼크와 관련, 아직 공식모임을 갖지는 않았지만 지방 개헌추진집회는 계속한다는 방침아래 민통련 등 재야세력과의 막후대화도 전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정당은 인천사태를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기본질서를 부정하고 국기마저 흔드는 폭력혁명』이라고 규정, 이번 사태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신민당의 반응은 쇼크에 비례해서 갖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경찰의 과잉방위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시각에는 각 파별이 일치하고 있으나, 「4.30제의」후 신민당의 대여투쟁에 대한 「경고용」이란 견해에서부터 「한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시련」이란 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쨌든 인천사태를 보는 여야의 시각에는 이처럼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만은 일치하고 있다. 특히 작은 폭력이 큰 폭력을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비록 소수지만 과격주장과 행동이 정국수습에 장애가 된다는 인식은 대체로 같이 하고 있다.
인천시위에서 나타난 섬뜩한 구호들이 대다수 국민들이 열망하고 있는 정치발전이나 자유민주주의를 의해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란 점은 이미 지적한 그대로다.
그러나 이번 인천사태는 그 동안 막연히 한덩어리로만 파악되어온 반체제세력 안엔 완전히 이질적이며 현실을 정면 부정하는 좌경조직이 실재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이들 세력이 공개적으로 분화, 노출되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시국수습에 책임이 있는 정치권은 인천사태의 이런 함축을 직시하고 보상으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민당이나 민주 등 온건재야세력으로서 그 동안 동지적인 입장에 섰던 과격그룹과 몌별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신민당은 언필칭 「자유민주주의」로의 정치발전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보수정당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의 권력 밖에 있는 세력과 혼합해 있음으로써 그 기치가 모호해지는 것은 스스로피해야 한다.
재야세력중 일부가 반미·민중혁명 등 과격주장을 내세운 마당에 이들 세력과 묵시적인 유대를 단절하지 못한다면 신민당으로서 좌경세력과 한패라는 평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수건재야세력은 지금이야말로 이들 과격세력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발전이란 과제는 시일을 다투는 것이므로 좌고우면하면 시기를 놓친다.
물론 가능한 한 내부적인 이견을 축소하고 정부·여당이 수용하지 못하는 소외계층의 요구를 대변하는 것이 민주정당으로서 신민당에 부과된 책무임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급진적인 주장마저 소화하려들다간 이것도 저것도 다 그르칠 위험이 있다 .민주화·개헌과 같은 당면목표에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치를 분명히 하는 길뿐이다.
만약 신민당이 지난날의 유대, 앞으로의 지지기반 등에 연연해서 노선천명을 주저한다면 대다수 국민의 신민당에 대한 의념은 물론 민주화란 목표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권의 대용 또한 보다 냉철하고 대국적이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천사태는 대화와 타협을 촉진하는 촉매제 구실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의 1차적 과제는 야당이 흔쾌히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도록 하는 노력에 집중되어야한다. 야당의 입장이 앞으로 난처해질 것을 기다려 회심의 미소나 짓는다면 사태수습에 책임을 진 집권당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야당의 곤경이 당장은 고소할지 모르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야당의 곤경은 여당의 곤경도 된다. 야권의 구심점이 흩어지면 그럴수록 정국수습도 한층 어려워진다. 그래서 민정당으로서 얻을게 무엇인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대타협은 이 사회에 실제로 있는 정치세력들이 서로의 실세를 인정하고 모든 세력들의 합의를 통해 이룩되어야만 참다운 정치안정은 성취된다.
산업화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성된 다양한 요구를 가능한 한 폭넓게 수용하는 것이 마땅히 정당의 할 일이다. 분명히 존재하는 정치세력들이 자신의 주장을 대변하는 정치의 양을 제공방지 못하는 상황아래서 만성적인 정치 불안은 불시 되기 어렵다.
민정당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고 또 이미 일어난 이런 현상을 직시, 이에 부응하는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한결같은 국민적 컨센서스며 여망인 이상 공산주의자를 빼놓고 대화의 자리를 같이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모처럼 정국주도의 책임을 떠맡게는 되었다지만 내부적인 장애나 갈등도 없지 않다고 짐작된다. 주도적인 역할에서 소외되어온 그 동안의 사정에 비추어 여러 어려움은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파생된 문제는 정치적으로 수렴하고 해결한다는 자세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여당은 이제 「대통령임기 전 개헌」까지도 정치일정으로 밝혀놓은 마당이다. 이와 같은 결단은 역시 자유민주주의로 보다 가까이 접근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따라서 여당은 「임기 전 개헌」 을 위한 실무적인 후속조치들을 차근차근 내놓아야 한다. 공연히 지엽말절의 문제에 집착하는 작은 정치에 혹시라도 연연하면 그야말로「큰 정치」 의 기회는 놓치고 말 것이다. 이제 기회를 놓치면 어느 하 세월에 또 기회를 만들겠는가.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도 『비난을 두려워해서 타협을 기피한다면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순리를 바탕으로 한 대화와 타협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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