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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장관 수지 여사를 국빈 대접하는 중국의 의도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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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옆 인민대회당 북문으로 미얀마 전통 의상 론지 차림의 여성이 들어섰다. 미얀마 ‘민주화의 꽃’에서 미얀마 문민 정부 최고 실권자로 변신한 아웅산 수지 여사였다. 그의 공식 직함은 국가 자문역 겸 외무장관이다. 그를 맞은 중국 측 대표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였다. 미얀마의 각료·수행원 30여명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비롯한 중국 대표단이 수지 여사의 뒤를 따랐다.

인민대회당 북대청(北大廳)에 마련된 환영식장에는 인민해방군 의장대 144명이 도열했다. 양국 국가 연주가 끝난 뒤 수지 여자는 사열을 위해 발걸음을 뗐다. 생애 처음 외국 군대를 사열하는 수지 여사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의장대원들을 응시하며 붉은 양탄자 위를 천천히 걸어나갔다. 리 총리는 수지 여사의 우측 반보 뒤를 따랐다. 중국 외교부가 엄격히 숫자를 제한한 4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이를 지켜봤다.

의전의 격으로는 국가 정상에 베푸는 것과 다름 없었다. 중국 의전 관행상 인민대회당 환영식은 외국 대통령이나 정부 수반(내각제 국가의 총리)의 방문, 그것도 공식 방문에만 국한된다. 따라서 이날 의장대 사열이 포함된 공식 환영식을 베풀었다는 것은 중국이 수지 여사의 방문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다. 루캉(陸康) 외교부 대변인은 "수지 여사가 대통령 다음 가는 의전 서열 2위인 점을 감안해 양국 협의를 거쳐 리커창 총리가 초청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들은 수지 여사가 미국에 앞서 중국을 찾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지는 9월 하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유엔 총회 참석을 겸한 방문이다. 또 집권 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이외 국가로는 중국이 첫 해외 방문이다. 중국은 독재 정부를 후원한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과거 미얀마 군부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얀마의 정권 교체가 확실해지자 급히 수지 여사와도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지난해 6월 야당 지도자 신분의 수지 여사를 초청한 게 대표적 사례다.

동남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미얀마 새 정부와의 관계 구축이 필요했다. 중국 입장에서 미얀마는 국경을 맞댄 이웃나라이자 인도양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루 대변인은 "중국은 미얀마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얀마가 미국의 중국 포위망 구축에 맞서는 출구의 하나이기 대문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서도 중국은 미얀마가 최소한 중립을 지켜주길 원한다.

수지 여사가 이런 전략적 계산이 깔린 중국 방문을 흔쾌히 받아들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추펑(計秋楓) 난징(南京)대 교수는 "수지 여사가 실용적 차원에서 중국과 서방을 양측에 두고 신중한 균형 외교를 펴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민주화 운동가가 아니라 국가 경영을 책임지는 정치인이 된 이상 국가 이익을 우선할 것이란 얘기다. 수지 여사의 균형 외교에는 미얀마가 옛 버마 시절부터 표방해온 비동맹 외교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수지 여사는 리 총리와 1시간 20분 회담하며 현안들을 논의했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회담 뒤 "2011년 중단된 미트소네 수력발전소 건설 재개 문제도 잘 논의됐다"고 밝혔다. 중국은 과거 미얀마 군부 정권 시절 36억 달러(4조원)을 투입해 북부 카친주(州) 이라와디강에 초대형 수력 발전소를 짓고 생산 전력의 90%를 끌어 쓰려했으나 그 해 출범한 테인 세인 대통령의 과도 정부가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은 수지 여사를 설득해 발전소 건설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대신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제 협력을 제공하고 양국 국경 지방에서의 소수민족 무장분쟁 종식에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수지 여사와 리 총리는 회담을 마친 뒤 경제기술협력협정 등 2건의 협력 문서에 조인했다.

베이징=예영준·신경진 특파원 yyjune@joog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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