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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돈 남아 돌아” “뭔 말씀 그렇게 하나”…대통령 앞 설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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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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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전국 시·도지사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대덕연구단지와 울산·여수·구미 수출단지 등을 열거한 뒤 “우리나라 발전의 역사는 지역 발전의 역사였다”며 “지역의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유정복 인천시장, 박 대통령, 권영진 대구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박원순(60) 서울시장과 홍준표(62) 경남지사가 서울시의 청년수당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전국 시·도지사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에 대해 직권취소 결정을 내리자 서울시는 법적 대응을 선언한 상태다.

청와대 시·도지사 간담회서 언쟁
박 “정부와 충돌 아닌 보완적 정책”
홍 “시골에 사는 것도 억울한데 차별”
공방 계속되자 이시종 지사가 만류
박 대통령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아

청년수당 정책은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19~29세 청년 중 소득 60% 이하 미취업자나 졸업유예자 중에서 약 3000명을 선정해 최대 6개월 동안 매월 50만원의 활동보조금(청년수당)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날 비공개 오찬 자리에서 박 시장은 박 대통령에게 “지금 청년들의 문제가 매우 심각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풀어야 한다”며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은 중앙정부와 충돌하는 게 아니라 보완적인 정책임에도 19일 대법원에 제소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그렇게 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 전까지 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잘 좀 살펴봐 달라”고 요청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그러자 곧바로 홍 지사가 마이크를 넘겨받아 “서울은 지금 돈이 남아돌아서 공짜로 청년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하지만 재정자립도가 40%대에 불과한 경남은 ‘공돈’을 나눠주려면 정부 도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이어 홍 지사는 “경남의 청년들이 나한테 와서 ‘박원순 시장은 청년수당을 나눠주는데 당신은 뭐하는 거냐. 시골에 사는 것도 억울한데 왜 이런 차별까지 당해야 되느냐’고 따지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홍 지사는 “이렇게 서울에서 돈을 퍼주기 시작하면 경남에 사는 청년들은 어떻게 살란 말이냐. 시골 청년들은 다 서울로 이사 가란 말이냐. 촌놈이라고 무시하지 말라”고 퍼부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공방은 5분 넘게 이어졌다.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이시종 충북지사가 나서 “여기는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그만하자”고 말리고 나섰다. 간담회가 끝난 뒤 박 시장이 홍 지사에게 “아니 말씀을 뭐 그렇게 하시냐”고 따지자 홍 지사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홍 지사는 박 시장의 경남 창녕군 고향 2년 선배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 시장과 홍 지사의 설전을 지켜만 봤을 뿐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배석했던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청년수당과 관련해 “정부에서 취업성공패키지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으니 그걸 활용하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통합적 전달체계가 원칙”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담회는 지난 2월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 열렸다. 박 대통령은 오찬 인사말에서 “각 지자체들이 지역의 혁신거점인 창조경제혁신센터, 문화창조융합벨트와 유기적 협업을 강화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관광프로젝트를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 시작 때 15명의 시·도지사(경북·강원지사는 불참)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일일이 지역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박 대통령과 시·도지사들의 개별 대화가 길어지는 바람에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 데까지 30분이 넘게 걸렸다”고 전했다.

김정하·박유미·안효성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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