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싫어요"…노인 재혼이 는다|부부 상이 바뀌고 있다<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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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청첩. 새 엄마를 모십니다. 오는 5월10일 하오 2시 저희 삼 남매는 이옥숙씨를 저희들의 새 엄마로 모시기 위한 조촐한 자리를 인사동 K음식점 별관에 마련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혼자 손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아버님 김현호씨가 새 출발을 하시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하오니 부디 참석하여 주십시오.
큰딸 혜미, 둘째 딸 혜정, 아들 철민.
이상은 2년 전 당시 65세로 재혼한 김현호씨(사업·서울강남구개포동) 의 결혼식에 즈음하여 자녀들이 친지들에게 보낸 청첩장. 55세에 상처한 김씨는 당시 여고·여중· 국민교에 재학 중이던 세 자녀를 키우며 가정부에게 살림을 맡기고 살았다.
그 동안 두 딸이 대학을 졸업, 결혼했고 외아들도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자 두 딸이 적극적으로 나서 외롭게 살아온 아버지의 노년의 말동무 겸 시중을 들어줄 사람으로 새 엄마 감을 골라 재혼시킨 것이다.
『이성 친구가 있었으면 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말동무가 필요해요 』 (김재연씨·70), 『2년 전 마누라가 죽고 나니까 불편한 일이 한 두 가지 아닙니다. 우선 먹고 입는 수발을 해줄 사람이 있어야겠어요. 재혼을 해야겠어요』 (박정훈씨·65),『아들은 회사 일로, 손자·손녀는 학교공부로, 며느리까지 늘 나가 사니까 한낮 혼자 집을 지키고 있자면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요』 (박정이씨· 58).
이렇게 노년에 혼자가 된 노인 중에서는 이성친구를 갖고 싶다거나 재혼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윤숙 교수(동덕여대·보건학)가 최근 서울 시내의 홀로된 60세 이상노인 2백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인들의 성 의식』 에 따르면 그들 중 65%가 이성교제를 원했고, 35%는 재혼을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앞의 김씨처럼 행복한 결혼이 이루어지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한국 노인 복지회가 지난 4년간 신청을 받은 재혼 희망자는 6백30여명. 남자 1에 여자 1·5의 비율인데 실제 결혼으로 골인한 경우는 25쌍이라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는 경제능력과 건강만 있으면 60∼70세도 10∼20년 연하의 젊은 여성만을 찾고, 여성들은 우선 상대의 경제능력을 따지니까 힘들어요. 60∼70년 살아온 서로의 가정·교육·문화배경이 다르고 자녀 등 주변 사람의 태도도 노인 재혼을 어렵게 합니다』 고 조기동 한국 노인복지회장은 얘기한다.
따라서 젊은 시절 알던 남녀가 노년에 다시 만나면 쉽게 결혼에 골인하고, 결혼보다 아예 친구로 사귀겠다는 노인들도 많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 재혼을 반대하는 경우는 대체로 어느 한쪽 부모에 대한 기억에다 재산상속· 부양 부담의 증가 등 경제 문제가 겹치기 때문이라고 조씨는 얘기한다.
최신덕 교수 (이화여대· 사회학)는 노후 가족생활 만족도는 사회 계층적 조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배우자가 있다는 것이 가장 으뜸의 조건. 다음은 건강과 높은 교육, 노인 스스로가 취미나 일등을 통해 자기생활의 의미를 발견하고 높은 경지의 신앙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있다.
그 런 의미에서 한국의 아내들은 남편들에 비해 수명이 길고 (평균 6세), 부부의 연령차등으로 .10여 년을 홀로 지내야 하므로 많은 문제가 있다.
대체로 경제력이 없고 사회성이 낮은 늙고 홀로 된 아내들은 일반 노인들처럼 이른바 사고인 빈곤·질병·고독·무위에 시달리며 그 위에 고부 갈등이 겹쳐진다.
오늘날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전통 사회에서와는 그 양상이 달라져 대부분 가정 경제권과 가사 결정권을 가진 며느리가 우세한 입장인 반면 시어머니가 희생자가 되는 수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도 노인 재혼 문제는 고려 대상이 된다.
노인 재혼 문제와 아울러 노후생활의 보장책도 급선무로 등장한다.
따라서 국가는 유료 및 무료 양로원을 세우는 등 노인복지에 눈을 돌리고, 자녀들은 경제적 부양은 물론 가정에서 소외감을 덜기 의한 인간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얘기다. <끝><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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