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카뮈의 낯선 만남, 이제껏 없던 무대 만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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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30면

서태지 노래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탄생했다. 지난해 제작 소식을 처음 접하고 무릎을 쳤었다. 몇 해 전 1960년대 미국 록그룹 포시즌스의 일대기를 진솔하게 담아낸 뮤지컬 ‘저지 보이즈’를 보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일대기라면 어떨까 싶었기 때문이다. 90년대 ‘문화대통령’이라 불렸던 서태지의 위상은 우리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닐 뿐더러 신비주의 베일에 가려진 그의 뒷얘기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아직 활동 중인 ‘살아있는 전설’ 아닌가. 무한한 부가가치를 생산할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갑작스런 은퇴와 비밀 결혼·이혼 등으로 적잖은 구설에 시달렸던 서태지의 사생활이 진솔한 스토리로 노출되기엔 아직 시기상조인 모양이다. 그의 노래들은 그의 이야기를 포기했고, 의문은 거기서 생겨났다. 랩과 힙합, 메탈이 대세인 그의 노래들이 오리지낼리티를 잃게 되지 않을까. 단순한 사랑노래도 아니고 CD를 거꾸로 돌리면 악마의 음성이 들린다는 괴소문까지 돌았을 만큼 의미심장한 추상적 가사들을 품어낼 스토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


카뮈의 『페스트』란 선택은 그런 의문에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카뮈가 누군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다. 1947년작 『페스트』는 전염병이 몰고온 대재앙으로 전쟁의 부조리한 상황을 은유하고, 그에 대처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룬 걸작이다. 세기말 문화혁명가의 노래와 대문호의 고전적 텍스트의 만남이 일견 낯설다. 하지만 ‘서태지 뮤지컬’은 그런 낯섦으로 평가받아야 하며, 서태지와 카뮈의 접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최근의 창작뮤지컬들은 보편성이라는 명분 아래 유럽 뮤지컬이나 브로드웨이의 흥행공식을 충실히 카피해 왔다. 시류에 편승하는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운명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연대와 투쟁으로 적극 맞서자는 카뮈의 메시지와 ‘시대유감’ ‘죽음의 늪’ 등 서태지의 대표곡들에 담긴 저항정신으로 무장한 ‘페스트’는 내용과 형식 양쪽에서 이제껏 없던 새로운 무대를 보여줬다. 상업 뮤지컬로서 드물게 날선 사회비판 정신을 호소했고, 영화 ‘매트릭스’류의 디지털 영상을 적극 활용한 무대는 애니메이션적 상상력이 번뜩였다.

카뮈는 동시대적 관점에서 적극 재해석됐다. 2차대전 직후 조용한 해안도시를 2082년이라는 근미래로 옮겨,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돼 엄격한 국가통제 시스템을 따르는 상황으로 설정했다. 20세기식 아날로그 인간성은 박물관에 갇혔고, 인간들은 행복유지프로그램이라는 시스템에 기억과 욕망을 제어당한 채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기술발전으로 보다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점점 커다란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실존을 고민하는 근거가 신에서 시스템의 지배로 바뀌었을 뿐, ‘인간의 힘을 초월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는 대주제는 더욱 강조됐다. 페스트로 도시 전체가 위기에 처하자 적극 구호에 나서는 의사 리유와 진실을 덮고 혼자만 살겠다는 시장의 대립을 극대화시켜 영화 ‘부산행’과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법을 지키라. 각자 자리에서 충실하라” “세상은 변하지 않는구나. 시민들은 이유도 모르는 채 죽어간다. 항상 그랬듯이” “시민들은 벌레 같은 존재” 등의 대사는 객석에 비수처럼 꽂힌다.


서태지도 적극적으로 재해석됐다. 일부 대표곡들이 빠지긴 했지만 ‘휴먼드림’ ‘슬픈 아픔’ ‘마지막 축제’ 등 귀에 익은 명곡들이 김성수 음악감독의 적절한 편곡으로 거듭났다. 악역 코타르가 직접 격한 춤과 랩을 소화한 ‘시대유감’,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감동을 더한 ‘Coma’ ‘Zero’ 등은 가요가 뮤지컬 넘버로 변신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할 만했다. 가장 의문이었던 랩 처리는 앙상블들의 아우성으로 원활히 소화됐는데, 솔로곡보다 앙상블 위주의 편성이 ‘연대와 참여’라는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맞았다. GOD 손호영 등이 주인공 리유로 나와 서태지 노래를 기대 이상으로 소화했지만 비중은 크지 않았고, 여러 배역이 골고루 조명을 받았다.


아쉬운 건 어정쩡한 타협이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커다란 깨달음으로 연대를 이끄는 수수께끼의 인물 타루를 발랄한 여성 캐릭터로 바꿔 분위기를 띄우고 달달한 로맨스로 감성을 간질이려 한 것이다. 대극장 뮤지컬인 이상 상업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장엄한 대서사시에 로맨스 양념은 재료의 맛을 해칠 뿐이었다. 차라리 원작 그대로 형제애를 부각시켰다면 대주제인 연대의식도 살리고 요즘 대세인 브로맨스 코드로 더 뜨거운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는 법이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스포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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