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치가 김일성보다 못해"…만취 발언에 옥살이 3년, 유족 34년만에 재심청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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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2월 10일 오후 8시30분. 충북 청주시 영운동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 술에 취한 한 50대 남성이 술주정을 했다.

“나는 김일성 대학을 나왔는데 운전수 같은 생활, 노가다 같은 생활로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느냐. 김일성 정치가 잘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김일성 정치보다 못하다. 이북이 더 살기좋다. 중앙정보부가 정치하는 것이 이러냐.”

한 승객은 이 남성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검찰·사법부는 유일한 증인인 버스 승객과 안내양 등 2명의 진술을 토대로 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에 회부된 그는 3년간 독방에 갇혀 옥살이를 마친 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가장을 잃은 그의 가족은 이때부터 ‘간첩’·‘빨갱이 자식’ 취급을 받았다.

34년 전 술 김에 던진 말 한마디로 범죄자가 된 김모(1986년 사망·당시 56세)씨의 유족이 이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고 나서 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김씨는 한국전쟁 중 월남했다. 51년 육군에 입대해 군 복무도 마쳤다. 한국에 정착해 가정을 꾸렸지만 사업이 실패하고 난 뒤 술에 의지해 살았다.

1982년 김씨가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김일성 정치보다 못하다”고 불평한 것도 만취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은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당시 서울고법은 그의 발언이 반국가 단체와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한 것이라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술에 취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3년간 복역한 뒤 85년 출소한 그는 보호감호소에서 생활하다 이듬해 생을 마감했다. 가족들은 김씨의 사망사실을 7개월이나 지난 뒤에 통보받았다. 가족들은 김씨가 고혈압 등으로 사망했다고 전해 들었을 뿐 이미 매장한 후라 시신도 보지 못했다.

이후 김씨의 아내와 3남매는 졸지에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 신원조회만 하면 어김없이 불이익을 당했다. 취업도 할 수 없었다.

유족들은 34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난해 말 김씨의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며 청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유족은 단순한 술 주정을 친북 활동으로 둔갑시켰다며 김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변론을 맡은 이선경 변호사는 “당시 김씨의 발언은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거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요소가 없어서 당시 법에 따르더라도 범죄의 구성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당시 사건을 맡은 경찰과 검찰 역시 김씨가 반국가단체에 가입한 사실이 없고 배후 세력도 없다고 확인까지 했지만 증인 말만 듣고 김씨에게 혐의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청주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이현우)는 지난달 심문을 종결하고, 재심 개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김씨는 제4공화국 시절에도 비슷한 언행으로 징역형을 받았다. 그는 75년 5월 23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해 박정희 정권보다 북한이 우월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등 같은 해 8월까지 수차례 비슷한 말을 했다. 당시 이웃의 신고로 반공법·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등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유족의 청구로 재심이 이뤄져 2013년 11월 무죄가 선고됐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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