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전담 검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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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이 새로 실시키로 한 살인 수사 전담 검사제는 강력 사건의 수사·지휘 체계의 강화로 해석된다.
사실 살인 전담 검사제의 필요성이나 요구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윤 노파와 박상은 양 피살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잇따라 내려질 때도 그러했고 최근 인천 여공 피살 사건에서 『유죄 판결엔 1백%의 증거가 필요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을 때도 전담 검사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법원은 갈수록 완벽한 증거를 요구하는데 수사 당국은 이렇다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여간 답답하지 않았다.
잇단 무죄 쇼크는 심각한 인권 시비와 함께 검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받게 했고 형사 사법제도의 불신감까지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최근 검사가 직접 수사해 기소했던 경주 당구장 여주인 피살 사건의 진범이 뒤늦게 검거되자 검찰 전반에 걸친 신뢰성에 대한 우려마저 일기도 했다.
살인 사건은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고 그 수법 또한 지능화하고 교묘해지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범죄를 다루는 수사 기관이 전문화하지 않고 요원을 정예화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들 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과 대응은 물론 검거한 피의자에 대한 소추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검찰이 뒤늦게나마 전담 검사제를 두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 제도 실시와 함께 몇가지 선행 사항들이 범행되지 않고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첫째, 검사의 수사 지휘권이 철저히 확보되어야 한다.
범죄 수사의 주재자가 검찰이어야 하는데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이 완벽하게 확립되지 않고서는 그 기능을 다할 수 없을 것이다. 현행 형사 소송법 상 사법 경찰은 형사에서 경무관까지로 되어 있으나 검사가 범죄 발생 후 초동 수사에서부터 수사 보고를 빠짐없이 받아 직접 참여하고 지휘해 왔다고 볼 수 없다. 식품 회사 독극물 사건에서 보았듯이 경찰의 극비 수사로 검찰은 사건 발생 1개월 후에야 보고를 받는 등 처음부터 겉도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전담 검사의 전문화와 인사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살인 수사에 필요한 고도의 전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검사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더구나 살인 전담 검사를 지망하는 검사는 흔치 않다.
과학 수사를 하자면 화학·물리학·의학 등의 자연과학 외에도 심리학·정신 분석학·사회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학문적 지식도 경비해야 한다. 미국 FBI의 경우 수사관에게 광물학을 비롯, 토양·식품 가공·염색·약리·기계 공학 등 수십 종에 이르는 전문 분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검사의 전문화는 앞으로의 과제이며 정예화한 검사에 대한 인사상의 배려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인 전담 검사가 지휘할 경찰관의 수사 기술과 자질을 향상시키는 교육 제도가 함께 이루어져야하며 가능하다면 검찰 소속 전담 수사관의 양성과 확보도 강구되어야 한다. 머리만 있고 손발이 없거나, 있어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처럼 마련한 제도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없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미국의 FBI처럼 검찰이 과학 수사 연구 기관을 산하에 당장 둘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과학 수사 장비와 요원 등을 갖추도록 충분한 재정상의 뒷받침도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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