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판화전을 보고 오광수<미술평론가>|비디오와 동판의 절묘한 결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프랑스의 미술평론가「피엘·레스타니」는 백남준을 가리켜 비디오예술의「레오나르도·다·빈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 「레스타니」가 백남준을 르네상스의 완성자「다·빈치」에 비견한 것은 비디오라는 새로운 영역의 예술이 한시대를 여는 것인 만큼이나 비중이 크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예술은 새로운 것의 창조여야 한다는 신념이 피력되어있다.
비디오예술은 물론 백남준에 의해서만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 영역의 예술가들이 활동을 펼쳐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비디오 예술 하면 먼저 백남준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단순히 이 분야의 창시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갖는 영역의 폭을 무한히 확대시켜 나가는 뛰어난 활동때문이다. 비디오필름만이 아니라 퍼포먼스·장치·조각등 비디오예술의 가능성은 그를 통해 무한히 열려지고 있다.
국내에선 처음 갖는 판화전(14일까지 현대백화점 지하2층 현대화랑 강남지점)도 단순한 판화매체에 의한 작품전이라기 보다는 비디오예술의 확대현상의 하나로 보아야 할것이다. 단지 스크린에 흐르는 영상이 아니라 종이위에 찍혀진 영상이란 차이뿐이다. 텔리비전 스크린을 본뜬 화면이 비디오예술의 한변주임을 실감시킨다. 따라서 비디오필름에서 보는 기발하고도 충격적인 연출이 판화를 통해서도 연장되어지고있다.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에서 비롯되는 판화는 종류가 10종으로 거의가 에칭(동판)판이다. 색동옷 문양의 색띠를 바탕에 깔고 그위에 당시와 방정식과 악보와 같은 것들이 설정된다.
스크린 안에 무수하게 분할된 작은 스크린을 만드는가하면, 표의문자의 해석, 아주작은 영상들의 띠, 주역의 괘를 반복시켜 나간 것도 있다.
그 내용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버린 것들이다.
당나라 이태백의 시와 현대 텔리비전이 공존되기도 하고 창공에 떠있는 별들에는「샤로트·무어만」과「존·케이지」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먼 과거로 갔다가 현대로 오는가 하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예시적인 현상도 교직된다. 비디오필름에서 보는 기지와 유머, 의외로움의 충격이 판화에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