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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야·정의 세제개편 논의 미룰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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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더불어민주당이 대기업과 최상위 고소득자의 증세를 겨냥한 당 차원의 세법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세제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인구절벽과 고령화에 따른 복지 확대 추세로 보면 세제는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이런 점에서 더민주의 제안은 시기적으로 바람직하다.

  하지만 표를 의식한 당리당략의 성격이 있어 꼼꼼한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현재 38%인 소득세 과세표준 최고세율 위에 41%를 신설하자는 제안은 타당성이 있다. 현재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43.3%보다 낮기 때문이다. 더민주가 제안한 5억원 이상 과표 대상자는 2014년 전체 근로소득자의 0.04%로 6336명이다. 세율 신설로 더 걷히는 세금은 4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세수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OECD 수준에 맞추고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문제는 48.1%에 달하는 소득세 면세자 비율에 대한 개선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근로소득자 둘 중에 한 명이 소득세를 안 내는 자본주의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이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과세 원칙을 무너뜨려 조세의 근간을 흔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느 나라나 국민개세(皆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은 면세자가 거의 없고, 일본 15.8%, 독일 19.8%, 캐나다 22.6%다. 한국도 큰 문제가 없었으나 2013년 소득세 면세점을 과도하게 높이면서 ‘면세자 왕국’이 됐다. OECD 기준으로도 한국은 소득세 수입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낮다. 최소한 OECD 수준에 맞추려면 최고세율을 추가하되 면세자 비율은 30%대 이하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를 과표 500억원 이상 기업에 대해 25%로 올리자는 제안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국내 법인세의 GDP 대비 비중은 3.2%로 OECD 평균 2.9%를 웃돈다. 법인세는 조세경쟁력과 직결된다. 글로벌 기업은 절세를 위해 국경을 넘어 본사와 공장을 옮겨 다닌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계기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가 법인세 인하 경쟁에 나서는 이유다. 법인세를 올리면 불황에 허덕이는 국내 제조업을 자칫 벼랑 끝으로 몰아 한국 탈출 러시도 가속화할 수 있다. 이미 5조원을 줄인 비과세·감면을 더 줄여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는 것이 먼저다.

  정부와 여당도 공론의 광장에 나와야 한다. 이미 GDP의 10%에 육박한 복지비용이 선진국처럼 20%가 되면 현재 세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올해 세수가 반짝 증가했지만 내년 이후에는 낙관하기 어렵다. 여·야·정은 이를 고려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부가가치세를 1%포인트라도 올리는 세입 확충 방안과 국민연금·공무원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비의 부과금 현실화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세제와 재정 건전성 유지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더 늦춰선 안 될 중대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