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스타킹]④ 망원라이프의 시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울에서 살곳을 정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실제 이사까지도 쉽지 않았다. 이사는 많이 다녀봤지만 은행 대출 부터 전체 과정을 혼자서 해본 건 처음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은행 멀리하기를 십수년째 해오다 보니 이론만 알았지 현실을 몰랐다. 몇번이나 은행을 오가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전세자금대출을 받았다.

 제로금리 시대에 후배들까지도 대규모 대출로 집을 사는 경우가 흔했지만, 내 몫이 아닌 돈을 왕창 빌리는 건 마음이 불편했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하우스 푸어(House poor)’를 논하고,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로 인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논해왔기에 그런 불편함은 더했다.

 주변에서도 “지금 아니면 집 살 기회가 없다” , “전세난이 이렇게 심한데 집값은 당분간 안떨어진다” 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냥 얼마남지 않은 전세 시대의 끝자락을 붙잡아 보기로 했다. 억 소리나는 대출을 완료한 날 대출 담당자는  “처음에는 정말 대출의 대자도 모르시더니 이제는 대출 상담 하셔도 되겠다”고 했다.

 서류와 돈을 해결하니 집이 문제였다. 틈틈히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 집을 찾았는데 공사 진도가 너무 느렸다. 장마가 시작됐고, 인근 집들이 가까워서 너무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엔 공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이사날짜는 닥쳐왔고 이전 살던 집에서 짐을 먼저 빼서 공사 중인 집의 방에다 몰아 넣어야 했다.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이사할 집으로 와보니 맙소사 2층 올라가는 계단이 없었다. 철제 계단으로 교체하려고 계단을 부숴놓은 거다. 급하게 사다리차를 불렀고 나무 사다릴 타고 2층을 오가며 1차 이사를 마쳤다. 몸도 없이 짐만 왔지만 확정일자는 받아야 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민센터를 검색해 한걸음에 내달았다. 그리고 마포구민으로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를 받았다.

*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가 중요한 이유

주택거래를 마치고 주민등록을 하면 임차인은 이튼날부터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을 가진다. 이는 전세기간 동안 집 사용의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의미다. 확정일자의 경우 살고 있던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자신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 확정일자를 기준으로 더 늦게 채권자가 된 이들보다 우선하여 자신의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비서류 임대차계약서, 본인 신분증
 -비용 600원

 짐만 옮겨 놓고는 열흘간 휴가를 다녀왔다. 집도 어차피 공사중이었고, 짐도 옮겨뒀겠다 걱정없이 해외로 떠났다. 바닥과 벽지 등도 이미 집주인과 상의 후 골라뒀기에 깔끔해질 새집을 상상하며 휴가를 떠났다. 휴가는 달콤했지만, 귀국 후 이사집 정리는 고됐다. 도배와 장판만 깔린 집은 휑했고 최소한의 인간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 땀나게 뛰어야 했다.

 모두다 새걸로 주문하고 차곡차곡 설치되는 걸 보기만 한다면 쉽겠지만, 장가도 안간다고 혼나는 주제에 혼수도 아닌 새가구를 마구 들여놓았다간 부모님에게 혼나기 십상이다. 이사비에 부동산 중개비 등 기타 비용들을 고려하면 여윳돈도 없었다. 결국 기존 물건들을 리폼해서 쓰고 새것같은 중고 물품 찾기에 나섰다.

 가장 시급한 건 에어컨. 20년만에 주택에 살게 된 나로썬 한여름 달궈진 옥상 바로 아래집의 열기를 견디기 어려웠다. 대낮엔 출근하고 해가 진 후에 퇴근하는데도 후끈한 열기가 집안을 휘감았다. 옥상 위를 태양 반사율이 높은 색으로 다시 칠해 달라고 요청하고 중고 에어컨을 서둘러 설치했다. 에어컨이 옵션으로 있던 오피스텔에서 한참 살았더니 에어컨이 없던 이틀 내내 열대야 속에서 잠을 설쳤다.

 에어컨을 설치했더니 두꺼비집이 문제를 일으켰다. 공사 중에 합선이 일어났는지 에어컨을 작동시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 전기가 내려가 버렸다. 밤에 주인 아저씨를 불러 확인했더니 두꺼비집은 여전히 공사중인 1층 한쪽벽에 있었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2층과 1층의 전기가 연결되어 있었던 거다. 그날부터 전기 공사가 끝나는 날까지 나는 한밤중에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1층 공사장 속 두꺼비집에 몇 차례나 드나들어야 했다. 아 힘든 이사여.

 조금씩 가구를 구해오고, 주문했던 전등도 도착하며, 퇴근 후 드릴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하루는 톱질을 하고 있고, 하루는 젯소를 바르고, 하루는 천장에 달라 붙어 전등과 스크린을 설치했다. 자정이 넘으면 골아 떨어졌고, 아침엔 아직도 난장판인 집을 뒤로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2주 간 고생하고 나자 어느정도 집이 틀을 잡았다. 조금만 더 정리하면 집들이 정도는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본격적인 망원동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그래픽=김하온

기사 이미지

망사스타킹 더보기▶
[망사스타킹 ①]서울서 원하는 집 구하기? 미션 임파서블
[망사스타킹 ②] 로망이 살아 있는 동네를 찾아라
[망사스타킹 ③] 돌고 돌아 찾은 보석 망원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