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 대단하군, 네이처가 박수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기사 이미지

“연구 성과를 4년 만에 4000% 이상 늘린 곳이 있다.”

실적 우수 100곳 중 11위 선정
4년 새 연구 성과 4000%↑
기초과학계 ‘샛별’로 꼽아
우주, 생명의 기원, 인간 등
26개 팀 ‘세상을 바꾸는 연구’
미국·중국 최상위권엔 뒤져
5년 뒤엔 50개 연구단 계획

28일 새벽(한국시간) 공개되는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Nature)’ 최신호가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Institute for Basic Science)에 주목했다. 네이처는 별책 ‘네이처 인덱스 2016 라이징 스타(Nature Index 2016 Rising Stars)’의 사설(Editorial Page)에서 기초과학연구원 성과에 감탄했다.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김두철

이 학술지는 2012년과 지난해 네이처 인덱스를 비교해 25개의 기초과학계 ‘샛별’을 선정했다. 2012년 1.03점이던 기초과학연구원은 4년 만에 이 점수가 50.3점으로 급등했다. 증가 폭(+49.27점)만 보면 스탠퍼드대(+48.84점)나 옥스퍼드대(+52.25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장은 “기초과학연구원은 자질구레한 논문을 다수 배출할 수 있는 연구에는 관심이 없다. 세상을 바꿀 만한 거대한 연구를 위해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세상을 바꾸는 연구’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인간에겐 캄캄하기만 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연구’다. ‘암흑물질’(dark matter)이 무엇인지만 알아도 우주가 품은 비밀을 상당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생명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연구다. 리보핵산(RNA)연구단 등이 생명 현상을 규명하려고 노력 중이다. 셋째,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연구’다. 시냅스 뇌질환연구단 등이 인간의 의식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뇌를 탐구한다.

기사 이미지

이런 연구라면 한국이 한번도 받지 못한 노벨 과학상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네이처 인덱스도 사설에서 “한국의 리더들은 기초과학연구원이 노벨상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의외로 “달갑지 않은 평가”라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이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둬 노벨상까지 받는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노벨상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의미다. 김 원장은 손사래를 치지만 기초과학연구원은 노벨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자율성을 대폭 준 것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은 통상 정부 과제를 따내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반면 기초과학연구원은 연구단장이 자율적으로 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연구비도 스스로 책정하며, 연구진까지 마음대로 꾸릴 수 있다. 실험적인 연구를 전폭 지원하기 위해서다. 26개 연구단은 매년 각각 최소 20억원에서 최대 110억원의 연구비를 받는다.

기사 이미지

그간 엄두를 못 내던 연구도 과감히 지원한다. 우주의 비밀을 벗겨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암흑물질 등 장기간·초대형 장비가 필요한 연구인 ‘거대과학’(big science)을 주로 수행한다. 가격이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전자투과현미경(TEM) 등 고가 장비도 연구에 필요하면 사들인다. ‘기초과학연구원식(式) 집단 연구’도 성과를 내는 비결이다.

예컨대 생명과학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김빛내리(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도 집단 연구로 성과를 냈다. 생명과학자인 김 단장은 평생 RNA를 연구했지만 실제 RNA 구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집단 연구 시스템 덕분에 스위스 취리히공대에서 구조생물학 전문가 우재성 연구위원을 영입했다. 단백질을 정제해 결정으로 만드는 노하우를 가진 연구자였다. 집단 연구 덕분에 김 단장은 RNA의 3차원 구조를 확인했고 두 차례나 학술지 ‘셀(CELL)’에 논문을 썼다.

기사 이미지

사실 막대한 예산과 실효성 때문에 기초과학연구원은 출범 전부터 논란을 겪었다.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을 명시한 과학벨트특별법은 2009년 발의됐지만 법안 통과에만 2년을 끌었다. 이후에도 부지 비용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이어지며 5년이 흘렀다. 하지만 네이처 인덱스 발표로 논란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관련 기사
[단독] "종신직 아깝지만 돈 걱정없이 연구만 하고 싶었죠"
② 우주 탄생 비밀 풀 ‘암흑물질’, 이것만 찾으면 바로 노벨상인데…



물론 한국 기초과학은 갈 길이 멀다. 네이처 인덱스가 크게 상승하긴 했지만 중국과학원(1357.82점·1위)이나 하버드대(772.33점·2위) 등 최상위권과 비교하면 절대 점수(50.3점)는 낮은 편이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김 원장도 동의한다. 이 때문에 그는 현재 26개인 연구단 규모를 2021년까지 50개로 늘릴 계획이다.

김 원장은 “창의적인 과학자를 영입해 세계적인 연구의 토대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네이처 인덱스(Nature Index)=네이처가 엄선한 68개 자연과학 분야 저명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수치화한 지표. 네이처가 논문 기여도, 공저자 수, 학문 분야별 가중치 등을 고려해 연구 성과를 수치로 변환한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구 성과 지표로 통용된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