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청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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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 간부직에 「청렴도 카드제」가 실시된다고 하더니 문교부가 교원의 근무평정에 청렴도를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무원의 재산과 사생활이 카드에 조사·기입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교육자들이 「도둑취급」을 받게 되었나 하는 항의가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물론 문교부의. 조처는 종래 교육관·교직관·품격·책임감·창의성·협조성 등을 평가하던 근무성적 평정사항에 청렴도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립교원 승진규정 개정작업 속에서 새삼 청렴도를 부가하게된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거기엔 우리 교육계에 빚어지는 부조리가 결코 미미한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과 이를 타개하려는 기강쇄신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교육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같은 당국의 의도는 한갓 교원불신의 표현일 뿐이다.
「2세 교육」을 사명과 책무로 의식하고 가난한 교육자의 길을 긍지로 느끼고 살아온 이들에게 그것은 더 큰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제도가 실시될 경우 승진되는 교원들은 청렴도에 있어 좋은 평점을 얻은 이들이요, 승진되지 못하고 일생 평교사로 충실한 이들은 은연중 「청렴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란 낙인이 찍히고 말지도 모른다.
그런 결과에 앞서 청렴도 평가가 과연 어떻게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더 의문이다.
모든 교사들의 청렴생활을 조사하기 위해 어떤 기막힌 묘방이 있다는 말인가.
「청백리」의 양성에 크게 신경을 썼던 고려와 조선조조차도 각각 「수분오사」와 「수분칠사」로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결코 「청렴도」를 측정했던 일은 없다.
농상을 성히하고 학교를 일으키며 무역을 고르게 하고 군정을 바르게 하는 등 업무가체에 충실해서 실적을 올리면 될 뿐 청렴을 근무기준으로 정하진 않고 있다.
「청렴은 수분의 본분요, 모든 선덕의 바탕」이란 다산의 지적처럼 그것은 공직과 교직의 기본일 뿐 그 정도를 평가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건만 왕조시대에도 않던 청렴도 평가를 오늘 현대 민주정치 하에서 채용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비합리적인 일이다.
공직과 교직의 기본인 청렴정신이 결여된 사람이나 그것을 해친 사람은 법에 따라 공직과 교직에서 제외하면 그뿐이다.
공연히 현직 공직자나 교육자의 긍지와 사명감을 해치는 「청렴도 평가」제도를 새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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