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보험료 월 8만9100원…저소득 전업주부 가입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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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업주부는 국민연금 가입 의무가 없다.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스스로 가입할 수 있다. 이들이 임의가입자다. 국민연금 인기가 올라가면서 임의가입자가 2012년 20만7890명에서 올 3월 26만13명으로 증가했다. 전업주부가 가입하려면 보험료를 얼마나 내야 할까. 최소한 월 8만9100원을 내야 한다. 그 밑으로는 낼 수 없다. 이 기준 위로는 본인이 선택하면 된다. 최고 39만원까지 낼 수 있다.

임의가입자 26만 명 중 42%가
배우자 소득 400만원 넘는 고소득층
“저소득자 위한 제도 취지 퇴색
하한선 없애 연금 양극화 막아야”

그런데 이 최소 보험료 기준이 서민들의 임의가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25일 ‘부자들의 리그, 국민연금’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접근권을 확대하기 위해 최소 보험료 기준을 철폐해 모든 전업주부가 가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 3만원 정도만 내고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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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원실은 3월 현재 임의가입자 26만13명 중 배우자의 소득을 알 수 있는 15만4414명을 분석했다. 이들의 41.6%인 6만4246명의 배우자 월 소득이 400만원 이상이다. 국민연금에서 배우자 소득이 이 정도면 최고 보험료에 해당한다. 반면 배우자 월 소득이 50만원이 안 되는 임의가입자는 850명으로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에 비해 4%가량 줄었다.

배우자 소득이 50만~100만원인 사람도 12.9%에 불과하다. 그동안 임의가입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서울의 강남·서초·송파구 거주자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월 8만9100원의 보험료를 20년 내면 월 33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낸 돈의 2.6배를 받는다. 수익률이 매우 높아 강남 전업주부에게 인기를 끌었다. 임의가입 제도는 원래 근로자나 자영업자가 아닌, 소득이 없거나 적은 사람을 위해 만들었는데 의도와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 의원실이 임의가입자의 월 보험료를 분석했더니 8만9100원인 경우가 전체의 56.7%에 해당한다. 최고액 보험료를 선택한 사람은 1%도 안 된다. 임의가입은 하고 싶지만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최소한만 가입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정 의원실 박상현 비서관은 “월 8만9100원, 연 107만원은 저소득층에게 적지 않은 돈”이라며 “최저 보험료 제도가 저소득층의 임의가입을 가로막아 노후 소득의 양극화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이 제도로 인해 전업주부 노후연금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것이다.

임의가입자의 최저 보험료(8만9100원)는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의 중위소득(99만원) 보험료(9%)다. 중위소득은 지역가입자를 일렬로 세웠을 때 정중앙에 해당하는 값이다. 8만9100원 기준을 없애면 최소한 월 2만4300원을 내야 한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4만6224명도 이 정도의 최소 보험료를 내고 있다.

임의가입자 보험료 하한선은 1999년 국민연금 대상을 농어민으로 확대할 때 도입했다. 당시 전체 가입자의 중위소득 보험료를 최소 보험료 기준으로 설정했다. 2010년 10월 지역가입자의 중위소득으로 기준을 바꿨다. 그래서 12만6000원이 8만9100원으로 떨어졌다. 이 조치 덕분에 임의가입자가 13만명가량 증가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문제점을 인정한다. 복지부 정호원 연금정책과장은 “99년 도시 지역 자영업자로 확대할 때 중위소득 이상으로 임의가입토록 정한 이후 이게 지금까지 하한선으로 굳어 있었다”며 “저소득 전업주부의 임의가입을 저해하는 문제가 있어 개선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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