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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당첨을 기대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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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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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정치부문 차장

대선 출마까지 노리는 새누리당 정치인이 최근 의원들과 여의도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 느닷없이 트로트 한 곡조를 뽑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본인은 ‘운치가 있다’고 여길지 몰라도 총선 참패 후에도 이어지는 새누리당의 혼란상이 오버랩되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뭔가 특별해야 한다.’

기자가 되기 전부터 가졌던 이 당연하고 막연한 생각은 정치부 기자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담당 막내기자 시절, ‘이회창 vs 노무현’의 구도 속에서 이회창의 승리를 예상했다. 여론조사는 줄곧 노무현의 리드였지만 난 이회창 쪽이었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불과 39만 표 차이로 패한 이회창은 정계의 거물이었다. ‘3金1李’란 말이 있을 정도로 3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노무현에 비해 뭔가 더 있어 보였다. 월드컵 축구 내기 때 전통적인 축구 강국에 마음이 더 끌리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랄까. 하지만 특별해 보이는 이회창은 ‘평범한’노무현에게 무릎을 꿇었고 필자의 예측도 실패로 끝났다. 고정표에 안주했던 이회창보다 시대정신을 미리 간파한 ‘바보 노무현’이 더 특별하다는 걸 유권자들은 먼저 알았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5년 뒤 보수 진영에 정권이 넘어왔다. ‘530만 표 차로 대권을 거머쥔 샐러리맨의 신화’ ‘투철한 애국심과 원칙으로 무장한 스토리 충만한 선거의 여왕’이 차례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보수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라는 극찬을 받았던 특별한 두 사람이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소선거구제’를 뼈대로 한 1987년 체제가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이 30년간 ‘임기 초 영광과 벅찬 기대→소통부족과 일방통행→시행착오→극심한 국론분열과 지지율 저하’의 사이클을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피해 가지 못했다. 정치 9단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3김 대통령도, 시대정신을 앞서간 ‘서민 대통령’도, 보수진영의 최고 카드였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에겐 전세역전을 도모할 1년7개월여가 남아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대한민국호의 핸들만 잡으면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궤도를 달렸다.

내각제 개헌론자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7일자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자들은 ‘대통령이란 자리는 좀 모자란 사람이 가도 헌법상 주어진 권한으로 5년을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각제의 총리는 능력이 없으면 못 버틴다. 그러니까 편하게 대통령 하려고들 한다”고 말했다. 2017년 대선의 큰 꿈을 꾸는 잠룡들이 김 대표의 말에 100% 동의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준비가 돼 있다. 내가 하면 다르다”고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피해 가지 못한 그 허들을 넘어설 ‘더 특별한’ 초인이 등장하길 국민들은 언제까지 로또 기다리듯 해야 할까.

서승욱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