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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발레계 가장 잘 아는 지금, 후배들 돕고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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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발레 꿈나무들에게 꿈의 기회로 여겨지는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YAGP)의 한국 예선(마스터클래스)이 오는 22~24일 서울에서 열린다. YAGP가 한국에서 예선을 여는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진 어린 학생들이 일본 등 해외로 나가야 예선에 참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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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선 유치는 한 발레리나의 집념의 결실이다. 주인공은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 서희(30·사진)다.

ABT의 넘버3 수석무용수 서희
세계적 발레 콩쿠르 한국 예선 유치
“명문학교 진출할 장학 특전 많아
한국 학생들 좋은 기회 누렸으면”

최근 뉴욕에서 만난 서희는 “내가 가졌던 좋은 기회를 한국 학생들이 다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YAGP는 장학 특전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 발레 콩쿠르다. 심사위원들은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미국과 유럽의 명문 발레학교로 데려간다. 서희는 2003년 대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왕성하게 활동중인 현역 발레리나가 이런 행사를 주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가 뜻을 세운 것은 4년 전인 26세 때. 주위에선 “더 나이 들어 하라”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은퇴 후’가 아닌 ‘현재’를 택했다. 그는 “세계 발레계를 제일 잘 알고 있을 때인 지금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막상 대회 개최 준비는 악전고투였다. 사단법인 설립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자금 마련은 평생 발레만 해온 그에게 특히 어려웠다. 그는 공연이 없는 시간엔 미국 발레계의 후원자들을 찾아 다녔다. 뉴욕의 설치미술가 강익중 화백과 동료 무용수들의 도움을 받아 맨해튼에서 펀딩 행사를 직접 열기도 했다.

수석무용수는 발레의 주인공을 맡는 발레단의 간판이다. ABT는 파리오페라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과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힌다. 서희는 ABT의 9명의 수석무용수 중 서열로 세 번째다. 세계 최정상에 오른 그의 메시지는 학생들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발레에 문외한인 이들에게도 그렇다. 그는 “발레단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재능이 있다. 하지만 가장 재능 많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아 춤을 추는 것은 아니더라”며 “어느 정도 후에는 노력이 재능을 이기는 것 같다. 매일매일의 노력이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발레리나로서의 하루는 연습과 리허설의 지루한 반복이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동료 무용수와 관객들은 그 순간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서희는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매일 높여가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연습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연습은 공연 날 후회하지 않기 위한 자기 만족”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공연을 하지 않고 3주 쉬었다. “쉴 때는 좋았는데 지나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다”고 한다. 대개의 발레리나가 마흔 살 전후에 현역 은퇴하는 걸 떠올리니 춤을 추지 않고 보낸 여름이 너무 아깝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올 여름엔 스케줄을 빡빡하게 잡았다. YAGP 한국 예선이 끝난 뒤 바로 출국해 일본·브라질·프랑스·영국·러시아 투어에 나선다.

글·사진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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