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7 지진 견디는 해운대 80층…중간 2개 층에 피난구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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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앞바다에서 지난 5일 규모 5.0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부에서 부산 해운대 50~80층 아파트가 흔들려 주민들이 놀라 대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8일 본지 기자가 현장을 찾아가 확인 요청을 했으나 취재에 응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지진 발생 당시에 마침 입주민대표회의가 열렸는데 아무도 진동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또 “당시 59층 피트니스 클럽에 20여 명의 주민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누구도 지진 발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식수·산소호흡기·사다리 등 비치
모든 층마다 2~3중 방화문 설치
비상계단 탈출에 14분53초 걸려
“평소 소방훈련 참여, 매뉴얼 익혀야”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인해봤다. 지진 발생 시점에 모두 운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당시 지진을 인지하지 못해 대피 방송을 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건물은 규모 7.0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내진설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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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우기자(가운데)가 8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한 아파트 1층에서 해운대 소방서 소방대원과 함께 지진대피 체험에 앞서 아파트를 들러보고 있다.[사진 송봉근 기자]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경우 이 아파트를 비롯해 해운대 주변에 숲처럼 조성된 50~80층 아파트는 지진 및 지진에 따른 화재 등 대형 재난 상황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을까. 부산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은 서울(19개 동)보다 부산(28개 동)이 더 많다. 특히 해운대에 80층 1개 동과 50층 이상 24개 동이 몰려 있다.

해운대소방서 소방안전계 소속 소방관 2명과 함께 강진에 따른 대형 화재 발생을 전제로 80층에서 직접 대피하는 체험을 해봤다. 높이 300m로 해운대에서도 가장 높은 마린시티의 D아파트가 대상이다. 화재가 발생했다면 우선 이 아파트 59층과 31층에 있는 피난안전구역으로 대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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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우기자가 8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한 아파트 80층에서 해운대 소방서 소방대원과 함께 지진대피 체험을 시작하며 스톱워치를 작동하고 있다.[사진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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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우기자(왼쪽)가 8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한 아파트 80층에서 해운대 소방서 소방대원과 함께 지진대피 체험을 시작하고 있다.[사진 송봉근 기자 ]

지난 2010년 해운대 38층 주상복합 건물 화재를 계기로 강화된 건축법에 따라 50층 이상 건축물에는 30개 층마다 1개 이상의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D아파트의 피난안전구역은 가로 16m, 세로 40m 규모다. 소화기와 휴대용 조명등, 비상 식수, 비상호출 통화 장치, 공기 호흡기, 소화전, 아래층과 위층을 연결하는 비상 사다리 등이 비치돼 있었다. 2~3중 방화문도 설치돼 있었다. 피난안전구역과 별도로 작은 대피구역이 각 층에 있다. 이곳에도 2~3중의 방화문이 설치돼 있다. 불이 날 경우 초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안전·대피구역에서 구조를 기다리면 된다.

8일 오전 기자는 5㎏짜리 가방을 메고 80층 옥상에 섰다. 입주민 전용 고속 엘리베이터와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때 이용하는 비상용 엘리베이터가 모두 고장 나 비상계단을 통해 뛰어내려 가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서다. 가로 15m, 세로 15m 크기로 헬기 1대가 착륙할 수 있는 헬리포트가 옥상에 있지만 소방헬기 구조를 기다릴 수 없다는 상황도 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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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우기자(왼쪽)가 8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한 아파트 지진대피 체험을 하던 중 59층에 있는 피난안전구역에 도착해 둘러보고 있다. [사진 송봉근 기자]

오전 11시34분. 80층 옥상에서 스톱워치를 누르고 비상계단 쪽으로 내달렸다. 50층까지 내려오니 숨이 턱밑까지 차 올랐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됐다. 40층에 도착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기서 멈추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계속 뛰었다. 11시48분53초에 1층에 도착해 주저앉았다. 80층에서 1층까지 뛰어오는데 걸린 시간은 14분53초. 1개 층을 내려오는 데 약 11초씩 걸린 셈이다. 1층에 도착하니 양쪽의 종아리에 알이 배어 주변의 도움 없이는 걷기조차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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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전문가들은 초고층 아파트일수록 지진·화재 등 대형 재난에 더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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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우기자(오른쪽)가 8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한 고층 아파트 지진대피 체험을 하였다.80층에서 출발하여 1층에 14분53초 만에 도착해 주저 앉아 있다. [사진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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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우기자가 8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한 고층 아파트 지진대피 체험을 하였다.80층에서 출발하여 1층에 14분53초01 만에 도착 했다. [사진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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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우기자가 8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한 고층 아파트 지진대피 체험을 하였다.80층에서 출발하여 1층에 14분53초01 만에 도착 했다. [사진 송봉근 기자]

부산소방본부 관계자는 “초고층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상·하반기로 나눠 연 2회 소방훈련을 하는데 참여하는 주민이 많지 않다”며 “평소 비상계단과 피난안전구역의 위치를 확인하고 재난 상황별 대응 매뉴얼을 숙지해야 실제 위급 상황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입주민 박모(46)씨는 “재난 상황 발생 시 아파트 자체 피난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며 “하지만 안전이 중요한 만큼 평소에도 재난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산=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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