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야근 따윈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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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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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
경제부문 기자

아침마다 휴대전화에 스무 개 이상 쌓이는 문자메시지들. 그사이에 “엄마, 저 학교 잘 도착했어요”라는 문자도 섞여 있다. ‘이 일만 끝내고 답장해야지’하는 사이에 교실에 들어간 첫째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다는 문자가 왔다.

잠깐이나마 마음이 아른거리는 것도 잠시, 나의 시간은 다시 회사의 시계에 맞춰 돌아간다. 대다수 맞벌이 가정에선 출근 시간에 맞춰 뛰쳐나오느라 부모와 아이 모두 전쟁이 따로 없다. 불안과 결핍의 연속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삶에도 생활의 리듬이란 게 생긴다. 출근 직전에 포옹·뽀뽀를 해야만 엄마를 보내주겠다는 아이의 규칙이나 자식들 대신 돌봄노동에 나선 부모님에게서 찾아낸 실낱같은 리듬이다.

이렇듯 버티는 삶에 익숙한 맞벌이들에게 충격적인 뉴스가 지난달 초 일본에서 나왔다.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가 5년 차 이상인 사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제를 시행한다는 소식이다. 일주일에 딱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그 외엔 집에서 근무한다. 도요타 본사 직원(7만2000명)의 3분의 1이 당장 8월부터 이렇게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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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본 대표 기업이 밝힌 변신의 이유는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나 노부모 간병을 위해 근무 시간이 유연한 직장으로 옮기는 ‘간병이직’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비슷한 이유로, 소비재 생산업체 유니레버 재팬도 이달부터 근무 장소와 업무 시간(하루 7시간35분)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저출산 고령화 위기에 직면한 국내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웃 나라의 ‘간지’ 나는 선택을 우리의 일이 되게 만들 순 없을까.

국내도 제도는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SK·LG 같은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도입한 기업이 150곳에 불과하다. 근무 시간을 주40시간 이하로 줄이는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국내 기업은 11%, 유럽(69%)·미국(36%)보다 턱없이 낮다. 시차출퇴근제 역시 국내(12.7%)는 미국(81%)이나 유럽(66%)보다 한참 낮다.

기업의 등을 떠밀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며 사는 직원들이 발휘하는 생산성의 가치를 알아봐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직장이 워킹맘에게도 좋은 일터다. 사실, 매일 일밖에 모르며 사는 사람보다 바쁜 하루를 쪼개 쓰며 최대한 업무 시간에 몰입해 일하는 워킹맘(워킹대디)이 일도 더 잘한다. 그 어떤 그럴싸한 제도보다도 일 열심히 하고 제시간에 퇴근하는 사람에게 눈치만 주지 않으면 된다. 불안 속에서도 리듬을 찾는 워킹맘들이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저자 이노 에이타로)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박수련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