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배가 미술관에 간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기사 이미지

미술관에 낡은 폐선박이 등장했다. 올해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당선작이다. 폐선박 안은 휴식공간으로 바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폐선박이 뒤집힌 채 설치돼 6일부터 관람객을 맞이한다. 원래 배의 볼록한 선수 부위만 옮겨놨는데도 그 키가 미술관 2층을 훌쩍 넘는다. 스웨덴의 팝 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가 도심에 설치한 대형 숟가락을 보듯 친근하면서 낯선 느낌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MoMA)가 공동주최하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올해 당선작이다.

정원으로 내부 꾸며 시민 휴식처로
신형철‘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당선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신형철 건축가(신스랩 아키텍처)의 작품으로, 작품명은 ‘템플(Temp’L)’이다. ‘템포러리(temporary)’와 ‘템플(temple)’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다. 신씨는 “뒤집힌 배의 겉은 옛모습 그대로 두고 안은 하얗게 칠해 정원으로 꾸몄더니 오래된 사원의 느낌이 나서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올해 공모전에 참석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도면을 그리는 대신, 폐선박을 찾아 다녔다. 그는 “프랑스 건축가 르꼬르뷔지에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에 소개된 그림 한 장에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파리의 주요 건축물을 일렬로 그려져 있고 뒤에 커다란 여객선의 그림자를 그린 그림이었다.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인 산물인 선박을 건축적으로 응용해보자고 결심했다. 전 세계적으로 1년에 1300척이 폐선되고 있는 만큼 이를 재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기사 이미지

밖은 그대로 폐선박 뒀다.

신씨는 “인도·파키스탄·중국 등에서 폐선박을 수소문했지만 운송비가 너무 비쌌다”고 전했다. 결국 전남 목포의 폐선박 작업장에서 기능을 다한 화물선 한 척을 만났다. 35년 전에 만들어진 60t짜리 배의 이름은 ‘그린 505호’였다. 시민들의 임시 안식처로 활용될 배는 열아홉 조각으로 나뉘어 운반됐고, 한 달여의 용접 과정을 거쳐 본래 형태를 찾게 됐다.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MoMA의 션 앤더슨 큐레이터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창작 방식인 ‘레디메이드’와 재활용 개념을 파빌리온 건축 설계에 접목시켜 재구성한 점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열린다.

글·사진=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